입력 : 2020.11.13 04:52
[땅집고]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결국 시프트(장기전세주택) 다시 도입하겠다는 거 아닌가요.”
정부가 점점 심각해지는 전세난 해법으로 제시한 중형 공공임대(전용 60~85㎡) 공급 정책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다가 사실상 폐지된 시프트와 닮은 꼴이라는 지적이다.
■2022년부터 중형 공공임대 공급 추진
“중산층을 포함해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중형 임대주택’을 공급,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겠다.”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세난 해소 방안으로 중형 공공임대 아파트 건설 카드를 꺼낸 것.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주택공사 등이 짓는 공공임대 아파트 기준을 현재 전용면적 60㎡ 이하에서 85㎡ 이하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3~4인 가구가 가장 선호한다는 34평짜리 아파트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정부는 중형 임대주택 공급으로 전세난 안정은 물론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까지 다양한 계층이 한 단지에 입주하면서 이른바 ‘소셜 믹스’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내년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 S-10블록(610가구)과 남양주 별내신도시 A1-1블록(577가구) 등 2곳에서 시범사업 진행 후 2022년부터 본격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 비싼 보증금에 소득 기준 까다로워 입주자 외면
전문가들은 중형 임대주택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한다. 2007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도입했다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았던 시프트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 시프트란 주변 전세금 시세의 80% 정도만 내면 최장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오 전 시장은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주택’을 짓겠다”면서 시프트 공급에 주력했다.
하지만 시프트는 수요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2011년 공급한 구로구 천왕동 ‘천왕이펜하우스5단지’에선 전용 114㎡ 시프트가 1순위에서 미달, 2순위에서도 130가구 중 57명만 접수해 경쟁률이 0.4대 1에 그쳤다. 2016년에는 서초구 잠원동 ‘래미안 신반포 팰리스’ 59㎡ 시프트 64가구에 50명만 신청했다. 특히 강남권 시프트 물량이 남아 돌았다. 2018년 기준 단지별 공실률이 ▲래미안 신반포 팰리스 59% ▲서초 푸르지오 써밋 49% ▲래미안 서초 에스티지 46%에 달했다.
당시 시프트가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 정부가 지원하는 임대주택인 만큼 입주하려면 까다로운 소득 기준을 충족해야 했는데, 이 계층이 비싼 시프트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시프트는 6억880만원에 공급됐는데, 3인 가족 기준 월소득 480만원 이하인 가구만 지원할 수 있었다. 이 가구가 월급을 10년 넘게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현재 서울시가 정한 장기전세주택공급 및 관리 규칙에 따르면 전용 60~85㎡ 시프트 입주자격은 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의 120% 이하. 2인 가구 525만원, 3인 가구 675만원, 4인 가구 747만원 정도다. 최근 서울 전세금이 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중형 임대주택을 아무리 ‘반값 전세’로 공급해도 보증금이 수 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만한 금액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 입주대상자는 거의 없다는 것. 한마디로 서민용 임대주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전세난 해소 못해…공기업 빚만 늘 것”
시프트 사업 주체였던 서울주택도시공사(SH)도 재정적 타격을 받았다. 당시 시프트는 SH공사가 재개발·재건축 신축 아파트를 매입하거나 일부는 직접 지어서 공급했는데 임대에 실패하고 공실 관리 비용까지 부담해야 했던 것. 특히 전세금이 비싼 강남권 시프트 공실률이 50%에 달하면서 SH공사가 매년 2000억원 수준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입주자 모집도 힘든 비싼 시프트를 공급하느니 저렴한 소형 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 정책 수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더 실효성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 시기도 문제다. 당장 임대주택이 공급된다고 해도 전세난 해소 여부가 불투명한데 중형 임대주택은 2022년 이후 공급될 예정이라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애초에 공급 시기가 맞지 앉아 전세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실효성 ‘제로(0)’인 정책”이라며 “과거 SH공사가 미계약 시프트 물량을 일반분양으로 돌려 손실을 보전하느라 급급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중형 임대주택 사업도 결국 공기업 부채만 눈덩이처럼 불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