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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시각] 최악의 전세난 초래한 또 다른 복병

    입력 : 2020.10.23 07:44

    [땅집고 기자시각] “같은 아파트라도 집집마다 조건이 조금씩 다르잖아요. 아무래도 집주인보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적절한 시세를 잘 아니까 얼마에 내놓으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때로는 수요자가 원하는 가격을 알려주기도 했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죠.”

    서울 강남구 개포동 T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A씨는 지난 8월21일부터 시행한 인터넷 부동산광고 단속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올렸던 이른바 ‘허위·낚시 매물’이 단속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선 중개업소의 어려움은 단순히 ‘진짜 매물’만 올려야 해서 생긴 건 아니다. 매매도, 전세도 매물 자체가 없어 거래를 성사시키기 힘든 게 진짜 고민이다.


    세입자 보호를 내세워 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서울에서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전셋집을 보겠다며 10개 팀이 복도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물건이 귀하니 가격은 치솟는다. 몇 달 만에 전세금 2억~3억원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대개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중개업소가 ‘보이지 않는 손’처럼 가격 완충 역할을 한다. 이런 식이다. 집주인은 11억원에 전세를 내놓길 원한다. 하지만 중개업소는 ‘거래를 더 빨리 성사시키기 위해’ 집주인에게 가격을 낮추라고 한다. 또 10억5000만원에 나온 소위 ‘허위 매물’을 보고 연락한 세입자가 나타나면 집주인이 마음을 바꾸기도 한다. 허위 매물 단속 이후로 이 같은 역할은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전세난은 더 심해지고 있다.

    중개업소의 인터넷 허위 매물 올리기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허위 매물은 시장을 교란하는 고질적인 병폐였다. 많은 중개업소가 시세보다 저렴한 ‘낚시 매물’로 손님을 유혹했다. “그 매물은 방금 나갔고, 더 좋은 게 있는데…”라는 말을 듣고 분통을 터뜨린 수요자가 한 둘이 아니다. 어떻게든 거래를 끌어내야 돈을 버는 중개업소가 만든 ‘나쁜 관행’이었다. 이런 허위 매물을 단속하겠다는 정부 취지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타이밍이 문제였다. 하필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상한제를 포함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직후였다는 것.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니 마음 급한 세입자는 집주인이 내놓는 가격에 어쩔 수 없이 계약한다. 전세 시장에 유례가 없던 ‘매도자 우위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허위매물 단속이 시작되면서 인터넷에서 전세 매물은 더 급감했다. 단지마다 이전의 80~90%까지 줄어든 곳도 있다. 그러나 사라진 매물이 모두 ‘허위 매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집주인 1명이 내놓은 전셋집을 복수의 중개업소가 매물 광고를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중개업소가 계약을 체결하면 다른 중개업소는 ‘허위 매물’을 올린 셈이 된다. 단속이 두려워 광고를 포기한다. 매물을 독점한 중개업소 탓에 중개업소간 경쟁은 사라진다.

    단속 여파에 따른 착시 효과로 전세 매물은 실제보다 더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없는 매물이 보이지 않게 됐으니 매물이 줄어든 건 아니다. 하지만 아파트마다 100건에 달하던 전셋집이 10건으로 줄어들면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셋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집주인은 더 마음놓고 전세금을 올릴 수 있다.

    허위 매물 단속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집중적인 단속을 시작한 의도가 ‘허위 매물 근절’이었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단속을 통해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정부는 중개업소의 ‘시세 조작 행위’를 막으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국민들의 거래를 들여다보는 ‘부동산 거래 분석원’을 만들겠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한상혁 땅집고 기자
    /한상혁 땅집고 기자 hsang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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