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0.18 20:02 | 수정 : 2020.10.19 16:35
[땅집고] “월 소득 720만원 이하인 (신혼)가구에서, 최소한의 소비만 하며 숨만 쉬고 저축해도 일년에 2000만~3000만원 모으기도 빠듯합니다. 자녀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어떨까요? 현금 7억원을 마련하려면 십수년 이상은 저축해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지난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금수저 신혼부부를 위한 특별공급 제도를 폐지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지난 7월 (서울) 강남 개포동에 분양한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의 특별공급 물량으로 나온 전용 34㎡ 주택형 분양가가 6억3363만~7억519만원에 이른다”며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을 갖춘 사람은 이 돈을 모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 간 수도권 신혼부부 특별공급(이하 신혼 특공) 당첨자의 90% 이상이 20~30대 젊은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신혼특공 특성상 젊은층이 당첨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혼특공 소득자격을 고려하면 이들이 순수하게 자력으로 모은 돈으로 집을 사기에는 역부족이다. 신혼 특공은 재산이 많지 않은 젊은 신혼부부들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는 제도인데, 지원 자격에 해당하는 계층이 높은 분양가를 부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고가 주택의 경우 신혼특공에 당첨된 신혼부부들이 이른바 ‘부모 찬스’를 활용한 불법 증여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당첨자 선정 이후 어떤 방식으로 자금조달계획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숨만 쉬고 연봉 7년 모아도 6억…서울 분양가는 7억
18일 국토교통부가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에게 제출한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3.3㎡(1평)당 분양가 3000만원 이상 고가 민영주택 분양에서 신혼특공 당첨자 90%가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총 174명 중 30대가 150명(86.2%), 20대가 14명(8.0%)이었다. 평당 분양가가 2000만원 이상인 단지의 신혼특공에서도 당첨자 209명 중 30대가 168명(80.4%), 20대가 23명(11.0%)으로 집계됐다. 평당 4000만원이 넘는 고가주택 단지 2곳 당첨자도 20~30대가 꽤 많았다.
민영주택 신혼 특공 자격요건이 ▲혼인 7년 이내 무주택 세대주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20%(3인 가구 기준 120%, 월 650여만원·맞벌이 130%, 722만원)이다. 하지만 이 자격 요건에 해당하는 신혼부부는 소득만으로 분양대금을 마련하기 사실상 어려워 부모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당 분양가가 3000만원인 아파트의 경우, 59㎡ 기준 분양가 총액은 약 7억5000만원 수준이다. 부부합산 월 소득이 722만원(연소득 8600만원)인 맞벌이 신혼부부가 월 소득을 단 한푼도 쓰지 않고 7년을 모아도 저축액은 6억200만원에 그친다. 고가 주택이 많은 수도권에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분양가의 40~50% 정도이고, 신혼부부가 사회초년생인 경우 소득이 더 낮을 것을 감안하면 20~30대 신혼부부 중 고가 주택에 당첨된 경우, 부모 도움없이 주택을 구입하긴 불가능에 가깝다.
■ 신혼특공 소득기준 완화했지만…“연봉 1억도 힘들어”
정부는 신혼 특별 소득자격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14일 공공 및 민영주택 신혼 특별 소득 기준을 완화해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의 160%(월 889만원)까지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연봉 1억원이 넘는 맞벌이 신혼부부도 특공 문턱을 밟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신혼 특공 우선공급 물량인 75%에는 진입할 수 없고 나머지 일반공급 25% 물량에 지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신혼 특별 중 일반공급 경쟁률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연봉 1억원 넘는 신혼부부도 자력으로 분양가를 부담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6)씨는 “신혼특공 당첨자를 보면 대부분 자녀가 있는 경우가 태반이고, 최근 분양주택 가격도 워낙 높기 때문에 제법 고소득이어도 집값을 자력으로 마련하기 빠듯하다”고 했다.
■ 불법 증여 없었을까?…신혼특공 비중 유연하게 적용해야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평당 3000만~4000만원에 이르는 고가 분양주택을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에 포함시킨 것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경우 현재 소득 요건 하에서는 분양대금을 마련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세무 당국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돈이 없어 신청하지 못하는 신혼부부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도대체 당첨자들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한 것인지, 불법 증여는 없었는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며 “신혼특공 비중을 공공·민영주택에만 차등을 둘 것이 아니라 분양가격에도 유연하게 적용해 분양가가 낮은 경우 신혼특공 물량을 더 확대하는 등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