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10.12 09:17 | 수정 : 2020.10.12 10:32
[땅집고] “요즘 전세가 워낙 귀해 ‘부르는 게 값’이니, 계약 체결됐다 하면 죄다 신고가예요. 지난달 강남구 ‘도곡렉슬’ 85㎡ 15억5000만원, ‘래미안대치팰리스’ 91.93㎡가 17억3000만원 등 모두 전세보증금 역대 최고가입니다(서울 강남구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최근 ‘전세금 폭등’ 현상으로 임차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임차인들이 전세 계약 기간을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갖게 되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수 억원씩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실거주 등 이유로 기존 전셋집에서 나와 새 전셋집을 찾아야하는 임차인들은 전세 매물 품귀와 전세금 폭등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보증금은 전주 대비 0.08% 올라 67주 연속 상승 중이다. 같은 기간 수도권은 0.14% 증가, 역시 61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금은 ‘부르는 게 값’이다. 이 때문에 서울 및 수도권 단지 곳곳에선 전세보증금 역대 최고가를 찍은 단지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더불어 순수 전세 매물은 줄고, 월세를 낀 반전세 매물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도 동반되고 있다.
■1만가구 ‘헬리오시티’에서도 ‘전세품귀’ 현상
총 9510가구 규모로 서울에서 가구수가 가장 많은 아파트인 송파구 ‘헬리오시티’. 지난 9월 1일부터 이달 11일까지 40여일 동안 체결된 임대차거래가 단 14건뿐이다. 이 중 순수 전세 거래가 4건, 나머지 10건은 월세를 포함하는 ‘반전세’였다. 헬리오시티 단지 내 중개업소 관계자는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기존 임차인들 대부분이 2년 더 전세로 살겠다고 눌러앉는 분위기라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라며 “매물이 안 풀리니 당연히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이 부르는 대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달 이뤄진 ‘헬리오시티’ 84㎡ 전세 계약은 26일 보증금 10억7000만원(2층)에 단 한 건뿐이다. 현재 전세보증금 호가는 11억~14억원까지 뛴 상태다. 그나마 반전세 거래가 활발하다. 지난달 19일 보증금 3억원에 월세 240만원(29층), 26일 보증금 2억원에 월세 260만원(9층) 등에 계약 체결되는 등이다. 이 아파트 근처 B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집주인 입장에서보면 저금리 및 보유세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월세 받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라며 “순수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반전세 집이라도 계약해야겠다는 세입자들이 수두룩해, 현재 반전세 거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북 대장주로 꼽히는 총 3885가구 규모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상황도 비슷하다. 현재 나와 있는 전월세 매물이 21건으로, 전체 가구 수의 0.5%에 그친다. 59㎡ 주택형의 경우 8월만 해도 전세보증금이 5억5000만~6억5000만원 선이었는데, 약 두 달이 지난 지금은 7억5000만원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84㎡ 전세금 역시 8억~8억5000만원에서 9억원 선으로 올랐으며, 현재 호가는 최고 9억5000만원까지 나와 있다.
■전세보증금 최고가 단지 속출…매매가 상승 요인 될 것
서울 및 수도권 단지 곳곳에서는 전세보증금이 역대 최고가를 찍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강남구 ‘도곡렉슬’ 85㎡가 15억5000만원(28일·5층)에 전세 계약되면서 해당 주택형 역대 최고 보증금을 기록했다. ‘래미안대치팰리스’ 91.93㎡도 지난달 29일 전세보증금 17억3000만원(28층) 신고가를 갱신했다.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이 같은 ‘전세보증금 최고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노원구 ‘하계1차청구’ 84.6㎡는 보증금 5억원(11일·7층)에 전세 계약됐다. 직전 8월 거래(4억5000만원)보다 전세보증금이 5000만원 올랐다. 입주한 지 28년 된 동작구 극동아파트 84.32㎡는 지난달 23일 전세보증금 5억3000만원(15층)에 계약돼면서 마찬가지로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금 폭등이 현상이 곧 매매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현재 수도권 집값이 관망세긴 하지만, 청약 가점이 낮은 30대나 전세금 급등에 불안해하는 세입자들이 주택 매수를 선택하면서 집값이 또 오를 가능성이 있다”라며 “앞으로 전세 시장 불안은 1~2년 정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곧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