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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즐겨 치던 박정희가 '능동 골프장' 없앤 까닭

    입력 : 2020.10.10 08:16

    인구 1000만명의 공룡 도시가 된 서울. 과연 서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땅집고는 서울 도시계획 역사를 다룬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의 저서 ‘서울도시계획 이야기(한울)’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의 공간 구조 형성에 숨겨진 스토리를 살펴봤습니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⑥능동골프장이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뀐 까닭

    1970년 우리나라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지자, 골프를 즐기는 인구도 늘어났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서울 광진구 능동에 있는 ‘능동골프장’에 자주 라운드를 나갔다고 한다. 전속 캐디가 정해져 있었고 대통령을 위한 클럽하우스를 따로 하나 짓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땅집고] 일제시대인 1929년 6월 완공된 서울 광진구 능동골프장. /한국골프협회 제공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의외의 지시를 내린다. “능동골프장을 옮겨라”. 당시 모 장관이 대통령과 골프를 치면서 “여기 동네 사람들이 칼을 던지곤 한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그렇게 민간인 반감을 사고 있는 골프장이라면 안 되지. 골프장을 아주없앨 수는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박 대통령이 골프장을 옮기라고 말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첫째는 박 대통령 스스로가 골프를 별로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드에 비교적 자주 나갔다고 기록돼 있지만 실상 박 대통령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그는 본래 고독한 성격으로 많은 사람과 함께 담소를 즐기지 않았다. 게다가 사교장으로 기능하는 골프장에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박 대통령은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권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시간도, 여유도 있는 계층과 항상 괴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둘째는 ‘새마을운동’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부터 박 대통령이 농촌마을 환경개선사업이자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내건 도시새마을운동, 국민정신개조사업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을 정도로 박 대통령은 새마을 정신을 전개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능동골프장의 존재 자체가 마음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적한 교외가 아니고 밀집한 주택가의 중심이 된 곳이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최고 지도층이 드나들며 한가로이 골프를 즐긴다는 것은 근면·자조·협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능동골프장을 좀 한가로운 교외로 옮기고 그 자리에 어린이를 위한 대공원을 조성하도록하라고 지시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어린이’를 위한 공원이었을까?

    [땅집고] 골프장을 헐고 들어선 어린이대공원. /어린이대공원 제공

    박 대통령은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던 경력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해마다 국민전체를 향한 신년사와 별개로 ‘어린이를 위한 신년 메시지’를 발표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빠짐없이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어린이를 향한 그의 감정은 1965년 1월 1일 메시지 내용 중 “나는 대한의 어린이들이 더욱 더 슬기롭고 씩씩하며 장차 세계에도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라는 구절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렇게 능동골프장은 어린이대공원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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