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25 04:13
[최광석의 법률톡톡] 상가 건물 세입자들이 월세 안 냈다고 함부로 단전·단수조치 했다간…
[궁금합니다]
호텔에서 각각 주점을 운영하고 있던 임차인 A씨와 B씨. 생각보다 주점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 바람에 월세를 수 개월여 동안 제때 못 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매장 불이 켜지지 않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건물주가 월세가 밀렸다는 이유로 이들 매장에 단전·단수 조치를 한 것.
임대차계약서를 보니 ‘차임 2개월 이상 연체하면 단전·단수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긴 했다. 건물주는 “그동안 임차인들이 월세를 안 내는 바람에 호텔 경영이 어려워졌고, 경매예정통지서까지 날아온 급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했다. 이에 A씨와 B씨는 “아무리 월세가 밀렸다고는 하지만 장사를 아예 못 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건물주를 상대로 업무방해죄 소송을 제기했다.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이렇게 해결하세요]
상가 임대차시장에서 월세나 관리비 등을 징수하려는 목적으로 세 놓은 점포의 물과 전기를 끊어버리는 건물주들이 많다. 보통 건물주들은 임대차계약서나 상가관리규약을 들면서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곤 한다. 하지만 함부로 단전·단수 조치했다가는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형법 제 314조에 따른 ‘업무방해죄’로 인한 형사처벌이 내려진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다만 법원은 임차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임대인의 행위가 얼마나 정당하고 합리적인지를 따져본 뒤 판결을 내리고 있다. 위 사례에서 법원은 건물주가 A씨 점포에 취한 단전·단수 조치는 무죄, B씨에 대한 조치는 유죄라고 판단했다(대법원 2007년 9월 20일 선고 2006도9157호 판결). 이유가 뭘까.
먼저 임차인 A씨의 상황을 보자. A씨의 경우 건물주가 단전·단수 조치를 내린 당시 임대차계약 기간이 만료된 상태였다. 임대료는 월 1000만원에 계약했는데, 월세가 밀리면서 보증금은 모두 소멸했다. 건물주는 계약이 끝난 후 월세 독촉 2회, 단전·단수 예고 1회를 시행한 뒤 조치를 취한 것이다. 법원은 이런 경우 임대인의 단전·단수 행위는 A씨가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불이행한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이며, 사회통념상 허용할 만한 것이라고 봤다.
B씨는 상황이 달랐다. 월 300만원에 임대차계약했는데, 단전·당수를 당할 당시 계약 기간이 9개월 이상 남아있었고, 월세가 밀리긴 했지만 보증금이 아직 7000만원 이상 남은 상태였다. 건물주는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런 경우라면 건물주가 임차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월세를 몇 개월 연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단전·단수 조치를 취한 것은 형법상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위 판례로 미루어 볼 때 법적으로 건물주가 단전·단수해도 되는 상황은 ▲이미 임대차계약 기간이 만료된 상태거나, 월세 미지급을 이유로 계약이 해지됐을 때 ▲보증금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월세가 밀린 상황일 때 ▲계약을 계속 불이행할 경우 단전·단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서면 등을 통해 수 차례 미리 알렸을 때 등임을 알 수 있다. 임대차계약서나 관리규약에 단전·단수 처분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이 명시돼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하는 이 같은 조치를 섣불리 취했다간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글=최광석 lawtis 부동산전문변호사, 정리=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