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11 04:30
“재건축 완공이 코앞이었는데, 유치권자들이 단지를 점거하면서 내 집에 5 년째 발조차 못 들이고 있습니다 (박재찬 S연립 재건축조합장).”
[땅집고] 서울 중구 신당동 S연립주택. 1970년대 지어진 지하 3층~지상 5층, 총 20가구짜리 소규모 단지다. 주민들은 2007년 조합을 결성하고 2010년 시공사를 선정, 기존 단지를 도시형생활주택 30가구 및 상가 1실로 재건축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착공 후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새 집에 입주를 못 하고 있는 상태다.
완공을 코앞에 둔 공정률 95% 상태에서 해당 주택에 유치권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조합원들은 집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다. 유치권자들이 단지에서 한 곳뿐인 출입구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24시간 상주하면서 외부인 출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도 유치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장 중 하나다. 조합은 지난 4월 재건축 시공사로 삼성물산을 선정, 기존 단지를 ‘래미안 원펜타스’로 새로 짓고 9월 중 분양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전 시공사였던 대우건설이 “공사비와 관련해 조합과 시공사 간 이견이 생겼는데, 이 과정에서 조합이 일방적으로 시공사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라며 유치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사업이 ‘올 스톱’됐다. 현재 대우건설은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현장을 지키면서 제 3자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유치권’으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멀쩡하게 다 지은 집에 입주도 못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대체 유치권이 뭘까. 부동산과 관련해 채권이 발생했을 경우, 채권자가 채권을 변제받을 때 까지 채무자의 건물을 점유하고 인도를 거부하거나, 해당 부동산을 경매에 붙일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건축 과정에서 유치권은 골칫덩이로 통하곤 한다.
기본적으로 유치권은 유치권자들이 건물을 ‘점유’하고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다. 이 때 점유는 건물에 24시간 상주하는 ‘직접점유’를 비롯해 ▲건물 출입문 폐쇄·통제 ▲주변에 펜스를 설치 ▲유치권 행사 내용을 팻말·현수막으로 게시하는 등 간접점유나, 제 3자(점유보조자)를 통해 건물을 지배·관리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한마디로 채권자들이 유치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건축주들은 건물 입주 및 사용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건설 현장의 유치권 분쟁은 공사 대금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사례로 등장한 S연립주택 재건축 현장도 공사비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조합 측은 “조합원 개개인이 토지를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가며 시공사에 공사대금을 건넸다”고 주장하고, 시공사 측은 “공사에 들어간 40억여원 중 실제로 받은 돈은 9억원 뿐이고, 그 결과 하도급업체 15곳에 공사대금을 체불하게 됐다”고 반박 중이다. 현재 이 현장에선 하도급업체들과 유치권 대리행사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밀린 공사대금과 이자를 합해 53억원은 받아야 한다”며 단지를 점유하고 있다. ‘신반포15차’ 역시 공사비 증액 규모에 대해 조합은 공사비 200억원(평당 449만원), 대우건설은 500억원(평당 508만원)을 주장하면서 갈등이 불거진 사례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유치권자들이 수 년 동안 직접점유를 하고 있는 현장은 이해당사자들 간 갈등이 굉장히 심각한 경우”라며 “법원에서 공사대금 관련 판결을 내도 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데 시간차가 생기면서 이자가 붙고, 또 다시 소송 거는 일이 생기면서 문제가 장기화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