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07 05:18
[땅집고] 지난 8월 26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우만동 일대 원룸촌. 아주대와 경기대 수원캠퍼스, 아주대병원 등이 가까워 인근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60만원 대 비교적 저렴한 연립·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다. 평소 이맘때면 새 학기를 앞두고 방을 구하는 학생들로 붐비지만 지금은 세입자를 구하는 현수막을 내건 건물이나 문 닫은 부동산 중개업소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인근에서 다가구주택 임대사업을 하는 A씨는 “원룸 2채를 월세 놓고 재산세·소득세·건강보험료에 건물 유지·보수 비용까지 제하면 월 50만원이 겨우 남는데 정부는 세금과 비용을 더 늘리겠다고 한다”며 “차라리 건물을 허물고 그 땅에 농사나 지을까 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임차 수요가 줄어든 데다 계약갱신청구권 강화 등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 여파까지 겹치면서 전국 원룸 임대 사업자들이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특히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이른바 생계형 임대사업자들은 수입이 줄고 비용은 늘어 사실상 벼랑 끝에 몰렸다. 전국 등록임대주택 156만9000가구 중 74.2%(약 120만 가구)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다. 지역 원룸 임대시장이 무너지면 장기적으로 1인가구를 위한 주택 공급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티나게 팔리는 빌라?…“서울만의 이야기”
“오늘 아침도 세입자를 끼고 임대사업자를 매수인으로 구해달라는 집주인들 전화가 계속 왔어요. 사실 거의 불가능이란 걸 알면서도 다들 어쩔 수 없이 두드려 보는 거예요.”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B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인기 있는 다른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반면 이 지역에선 가격 변동이 크게 없었기 때문에 매매를 해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집주인들이 많다”며 “문의에 비해 실제 매물이 쉽게 나오기 어렵다”고 했다.
다세대주택 등 임대사업자들은 새로 도입된 임대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증금 2억원짜리 전셋집 한 채에 연간 30만원 정도의 보험료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큰 금액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많은 사업자들이 원룸 월세 외에 딱히 소득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특히 앞으로 폐지되는 단기임대(4년)나 아파트 장기임대(8년)와 달리, 비(非) 아파트 임대주택(8년) 사업자들은 자진 말소조차 불가능하다. 임대기간 만료 후 임대사업자 등록을 포기하면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맞는다. 이들이 징벌적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임대사업자 승계’를 조건으로 매각하는 길 밖에 없다. 하지만 매수자 입장에서도 이 같은 부담을 떠안고 다세대 주택을 살 이유가 없다.
서울이나 인접 지역을 제외한 다세대·다가구 주택 시장은 사실상 거래가 끊긴 상황이다. 땅값에 최소한의 건축비만 더한 가격에 매물을 내놓아도 거래가 쉽지 않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4층짜리 다가구주택 시세가 9억원인데 그 중 땅값만 7억5000만원”이라며 “가격을 더 낮출 수는 없으니 손해보더라도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에서 도시형생활주택을 운영 중인 한 임대인은 “서울과 달리 수도권·지방에서는 달리 시세 차익을 기대하고 산 게 아니라 월세 수익을 보고 매입한다”며 “수익률이 떨어지면 매매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임대사업자의 부담이 커지면 단기적으로 세입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수도권·지방의 1인가구용 원룸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지역의 주택임대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 주택임대사업 공급이 줄어들고, 결국 임대료 상승으로 임차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정 땅집고 기자 choiyj90@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