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01 04:06
[땅집고] 지난 4일 정부가 ‘8·4 대책’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공공분양주택 모델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초기 분양시 집값의 20~40% 정도만 납부하고, 나머지 잔금은 최대 20~30년 동안(4년마다 10~20%) 나눠 내면서 주택 지분을 취득해나가는 방식이다. 물건을 할부로 사는 것처럼 아파트로 할부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
정부는 지분적립형 주택은 무주택자들만 청약 가능하며, 추첨제로 당첨자를 가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 점을 들어 “목돈이 없는 생애최초구입자나 청년층, 신혼부부에게 지분적립형 주택이 도움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SH공사와 함께 2028년까지 서울에 ‘연리지홈’이라는 브랜드를 단 지분적립형 주택 1만7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때 자금난으로 폐지한 ‘분납형아파트’와 똑같아
일단 발표만 보면 그럴싸하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과거 정부에서도 비슷한 대책이 나왔다가 유명무실하게 사라진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할 때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정부는 ‘분납형 임대아파트’ 제도를 도입했는데, 분양가의 30%만 내고 입주한 뒤 이후, 3차례 분납(4년 20%, 8년 20%, 10년 30%)을 통해 내집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나온 지분적립형 주택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23만8680가구 중 약 14%(3만4237가구)를 분납형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시범 사업만 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2011년 서초보금자리 분양 때 첫 분납형 임대아파트 55가구를 공급했는데, 청약 경쟁률도 각각 6.77대 1, 11.24대 1로 높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금세 사라졌다.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 초기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담했는데, 이 부담이 너무 커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0~2013년 LH가 보금자리주택사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금융부채는 4년 동안 총 17조4104억원이었다. 여기에 분납형 임대 아파트까지 계속 공급하니 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어나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분적립형 주택도 시행자인 SH공사가 초기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여서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서울시가 든 사례를 보면, 59㎡ 아파트 한 채를 5억원에 공급할 경우 SH공사가 3억7500만원(75%)을 선부담해야 한다. 계획대로 1만7000가구를 공급한다면 총 6조5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SH는 이미 부채가 작년 말 기준으로 16조원이 넘어 추가로 부채가 급증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구체적인 공급일정 전무한 데다가 정부·서울시·SH공사 의견도 엇갈려
이 사업이 실현 가능성이 적은 또다른 이유는 부지 확보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정부는 지분형 주택을 8·4 대책에서 발표한 공공재건축 공공분양물량 및 신규확보 공공택지에서 공급할 계획인데, 이 중 구체적인 공급 날짜가 확정된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 규모가 가장 큰 3곳(태릉골프장 1만가구·마포 6200가구·과천 4000가구)에선 지자체 및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사업 추진이 불투명하다.
이 사업을 두고 중앙 정부와 서울시, SH공사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정책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원구 ‘하계5단지(640가구)’를 첫 시범 대상지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천현숙 SH공사 도시연구원장은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김 정책관이 언급한 ‘하계5단지’는 공공임대아파트라 재건축하려면 모든 입주자들에 대한 이주대책 각각 세워야 하는 등 각종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반 재건축 사업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천 원장은 또 “하계5단지에서 시범 사업이 진행되기에는 무리가 있고, 어느 곳이 시범단지가 될지 말하기는 아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결국 세금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 재정에 그럴만한 여유는 없다. 이미 각종 복지 정책을 쏟아내 재정이 고갈된 상황이고, 고소득자와 법인에 대한 증세 정책도 한계 수준에 와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부동산연구소장은 “기본 날짜조차 확정되지 않은 계획이기 때문에, 지금 제도 실효성에 대해 논의할 가치도 없다”며 “정부가 발표한 지분형 주택 제도를 바라보고 내집 마련 계획을 세우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