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8.25 04:26
“아파트 매수해 싹 인테리어 하려고 벽을 뜯었는데, 쓰레기가 5톤이나 나왔습니다.”
[땅집고] 지난 5월 경기도 성남의 한 복층 아파트. 집주인 의뢰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 위해 1층 벽을 뜯어낸 인테리어 전문업체 대표 A씨는 깜짝 놀랐다. 아파트 벽 안이 쓰레기 더미로 가득해서였다. 폐기물 대부분은 뜯어낸 벽지, 석고보드, 조명등 껍데기, 나뭇조각 등으로 모두 합해 5톤 분량이나 됐다. 당초 쓰레기가 나온 공간은 상·하수도관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관을 제외하면 텅 비어있어야 하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2층 벽에서도 폐기물이 발견됐다.
A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열이 잘 됐는지 확인하려고 벽을 조금 철거해서 안을 들여다봤더니 공사 폐기물이 잔뜩 들어있었다”라며 “최초 아파트 시공 때는 감리를 시행하기 때문에 건설사가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전 가구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던 업체가 폐기물을 따로 처리한 대신 벽에 묻어버린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했다.
다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집주인은 이전 집주인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쓰레기를 치운 뒤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전 집주인에게 연락해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 “벽을 안 뜯었으면 쓰레기랑 살 뻔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성남 아파트 사례처럼 새로 매수한 주택에서 폐기물이 대량 발견된 경우, 전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법무법인 로티스(Lawtis) 최광석 변호사는 “이런 경우 민법 제 580조에 따라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을 법리로 들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하자담보책임이란, 매수인이 취득하는 권리·목적물 등에 하자가 있을 때 매도인이 부담해야 하는 책임을 뜻한다. 한 마디로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물건을 팔려면 해당 물건이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하고, 만약 하자가 있을 경우 매수인에게 충분히 설명한 뒤 매매계약을 체결하라는 의미다.
위 사례에서는 매도인 역시 아파트 벽에 폐기물이 매립돼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자담보책임은 매수인이 매도인의 귀책사유를 입증하지 않아도 일정 조건만 갖추면 성립한다. 성립요건은 ▲매매계약이 유효한 계약이어야 함 ▲부동산 계약 시점(계약 체결일부터 잔금일까지)에 하자가 있어야 함 ▲매수인이 선의여야하며, 과실이 없어야 함 등이다. 다만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기간은 B씨가 아파트 하자에 대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6개월까지인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소송을 제기할 경우 B씨가 매도인에게 할 수 있는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첫 번째는 ‘계약 해제’. 만약 폐기물 때문에 집에서 거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하며 계약 해제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내용에 그친다. 당초 아파트를 매수한 목적, 즉 도저히 실거주할 수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쓰레기를 치우고 인테리어를 끝내면 별 탈 없이 입주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아파트 매매대금 대비 하자 비용(이 경우 벽에서 나온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든 비용 등)을 따져보면 매우 미미한 정도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계약 해제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B씨가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면 법률상 충분히 인정 받을 가능성이 높다. 폐기물을 처리하고 뜯어낸 벽을 메꾸는 데 들어간 비용 등을 매도인이 지불하도록 요구하는 식이다. 만약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매수인이 다른 주택에 머물러야 한다면, 임시 거처에 쓰는 비용 역시 함께 청구할 수 있다.
최 변호사는 “아파트 벽에서 인테리어 업체가 묻어둔 쓰레기들이 발견돼 분쟁을 겪는 사례는 매년 흔하게 일어난다”라며 “이번 사건 당사자인 B씨는 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기로 결정했지만, 억울한 매수인들이라면 이전 집주인에게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