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8.04 13:33 | 수정 : 2020.08.04 13:52
[땅집고] “공공 재건축하려고 녹물 나오는 집에서 수십 년간 참고 기다린 게 아니다. 정부는 우리 아파트를 이용할 생각하지 말라”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50대 김모씨)
집값이 급등하는 동안 “서울 집값이 오르는 것은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며 버티던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가 최근 2~3개월 사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고 공급 활성화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집값은 물론 전·월세까지 급등해 서민은 물론 중산층까지 심각한 주거위기 상황에 몰아넣은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정책 중 하나가 도심 재건축에 인센티브를 주고, 주택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것.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이 사업 주체로 참여해 조합에 용적률 상향, 층수제한 완화 등을 제시하는 대신 공공분양과 공공임대 주택을 짓겠다는 방안이다. 통상 재건축 때는 공공임대 주택을 넣는 방안이 일반적이지만, 임대주택만 넣을 경우 사업성이 악화되고 조합원에게는 이득되는 것이 없어 ‘공공 분양’ 물량도 확보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공공 재건축이 활성화하면 강남·여의도·목동 등 주요 지역에서 수만 가구의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 이 일대에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주요 단지는 6만가구 규모다. 정부는 이 단지들의 용적률을 높이면 추가 공급 물량은 최대 10만가구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정작 강남 재건축 단지를 비롯한 서울 주요 재건축 조합들은 ‘공공 재건축’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이다. 정부가 ‘공공성’과 ‘공급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해당 조합들은 ‘수익성’과 ‘고급 주거 단지’에 무게를 두고 있어 상충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초과이익환수제 예외·분양가상한제 제외 등 파급력이 큰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재건축 조합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결국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서의 주택 공급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제와서 공공 재건축? 정권 교체 때까지 버틸 것”
정부가 주요 재건축 단지의 사업 재추진 방안을 새롭게 내놨지만 대치동 은마·압구정 현대·잠실동 주공 5단지 등 강남권 단지들은 대체로 싸늘한 반응이다. 이들 단지는 “임대 주택 등을 늘릴 경우 사업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공공 재건축’에 대해 거부감을 크게 드러냈다. 정부의 계획처럼 상당수의 분양 물량을 공공으로 풀면 수억원에 달하는 추가 분담금과 초과이익환수제 등을 조합이 부담해야 한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큰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대든, 분양이든 공공 주택을 많이 지을 경우 현실적으로 일반 분양 아파트와 똑같은 품질로 짓는 것은 어려워 단지 내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고, 소위 ‘명품’단지가 되는데에도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는 조합원들도 많다.
강남권 단지의 한 조합 관계자는 “강남권 주민들은 임대주택이라는 말만 나오면 하면 손사래를 친다”며 “임대주택 비중이 대폭 늘어나고 고밀도 재건축이 이뤄지면 상업지역처럼 주거 환경이 열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잠실주공5단지 조합 관계자는 “우리 단지는 정비계획 변경안 일부가 통과돼 이대로 재건축이 정상 추진되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 정권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버티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3년 동안 실패한 것처럼 ‘공공분양’ 카드도 실패 가능성 높아
당초 정부는 공공재건축 사업에 ‘임대’만 넣으려고 하다가, 조합의 참여율이 저조할 것으로 보이자 공공분양도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재건축 단지에서 공급되는 공공분양은 지분 적립형이나 토지 임대부 방식이 접목돼 분양가격이 일반분양가 대비 반값 수준으로 낮추는 구상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이라면 조합들이 공공 재건축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사업성 측면에서 공공임대보다는 공공분양이 낫기는 하지만, 조합원 입장에선 공공으로 물량 자체가 많이 풀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주민들의 우선 순위는 조합을 연내 설립해 2년 실거주 요건을 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6·17 대책 발표 당시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운 소유자만 재건축 입주권을 주기로 했다. 강남권 재건축 조합 일대에서는 “국가에서 할 일을 조합의 재산권까지 침해하면서 대신 하라는 것 아니냐”며 “지금까지 재건축을 하려고 수십년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것도 문제도 아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파격적 인센티브 없어 참여율 저조할 듯
부동산 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불문율과 같았던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건은 결국 수익성 보장 여부인데 조합을 유인할 만한 인센티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합들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재건축초과이익환수 예외 등의 파격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공공 재건축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분양가상한제 적용은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했지만 결국 이번 8·4 공급대책에서 분양가상한제를 면제해주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업성과 공공성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공공성만 강조할 경우 사업성이 떨어져 조합의 참여를 유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결국 조합원들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 관건인데 현 정부가 이를 허용하진 않고 있다”며 “재건축 규제 완화로 공급 확대 효과를 노린다면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존 용적률이 높아 수익성이 낮은 비강남권 재건축의 경우 공공 재건축에 관심을 둘 가능성도 제기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정 부분을 임대아파트로 기부채납하더라도 용적률을 높이면 부족한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강남권보다는 비강남권 일부 재건축 단지들만 참여 의사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