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22 05:36
지난 16일 오전 찾은 서울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새하얀 펜스로 둘러싸인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 왔다. 종로구 세운3구역(3-1, 3-4·5)을 재개발해 아파트 535가구와 도시형생활주택 487가구를 짓는 ‘힐스테이트 세운’ 주택건설 현장이다. 이달 분양을 앞두고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인근에선 세운6-3구역을 개발하는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도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곳엔 지하 9층~지상 26층, 614가구 규모 주상복합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달 10~11일 이틀 동안 청약을 받은 이 단지는 평균 10.7대 1, 최고 34.9대 1 경쟁률로 청약 마감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그동안 50~60년 된 가게들만 가득 차 있던 세운지구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개발 사업에 들어간다. 2006년 재정비 지구로 지정된 지 14년만이다. 세운지구는 1970~80년대 ‘세운상가’가 전자산업의 메카로 명성을 날릴 때부터 강북의 핵심 입지로 꼽히던 곳이다. 이곳에 아파트를 포함한 주거시설 1만 가구가 들어서면서 서울 중심 업무지구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입지를 갖춘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광화문·종로까지 걸어서 20분 이내, 청계천 산책로 걸어서 출퇴근 하는 호사 누릴 수도
세운지구는 서울 종로·중구 일대 도심 한복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세운상가’ 7개 동 주변으로 자리잡은 재정비 구역이다. 2006년 최초로 재정비 계획이 나왔을 때는 세운상가를 전면 철거한 후 녹지축을 조성하고, 주변 일대를 고밀도로 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4년 세운상가는 그대로 남겨둔 채 주변 지역만 재개발하기로 했다. 현재는 중구·종로구에 걸쳐 있는 총 43만9356㎡ 규모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중에 약 70% 정도는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틀었고, ‘힐스테이트 세운’을 비롯한 10여개 단지 총 1만 가구 규모의 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세운지구에 짓는 주택에선 지하철 1·2·3·4·5호선 전철역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무지개 역세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철역 노선이 파랑·초록·주황 등 다양한 색으로 표시되는데, 이런 전철역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광화문·종로·을지로 업무지구까지는 걸어서 15~20분 정도여서 청계천 산책로를 걸어서 직장을 출퇴근하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주택건설 업계에선 앞으로 세운지구가 광화문 도심 주변 지역 주택공급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 3대 업무지구인 중심업무지구(CBD)는 교통·상권이 발달한 대한민국의 핵심 지역이다. 하지만 이 일대에 유독 살 만한 주택 단지가 부족한 것이 단점으로 꼽혔다. 강남이나 여의도의 경우 업무 중심지를 끼고 대규모 주거지가 함께 발달했지만, 광화문이 있는 종로·중구 일대에선 지난 20~30년간 주택 공급이 거의 없었다. 도심 한복판이라 집을 지을 땅 자체가 부족했던 탓이다.
■기업 많지만, 주택 공급 없었던 주택 불모지, 주택공급 숨통 트여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지인’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종로구에 입주한 주거시설은 아파트·오피스텔을 모두 합쳐도 ▲2015년 252가구 ▲2016년 377가구 ▲2017년 2844가구 ▲2018년 0가구 ▲2019년 832가구다. 같은 기간 중구도 ▲2015년 267가구 ▲2016년 2049가구 ▲2017년 1635가구 ▲2018년 1164가구 ▲2019년 1458가구에 그친다. 이 시기 종로·중구와 맞붙어있는 서대문구·성북구·마포구에선 대단지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면서 한 해 입주물량이 1만가구를 넘기도 했던 것과 비교하면 공급 물량이 바닥 수준이다.
세운지구에서 현재 사업 속도가 가장 가장 빠른 곳은 세운6구역과 3구역이다. 대우건설이 6구역에서 ‘세운 푸르지오 헤리시티’가 지난 10일 청약을 받은데 이어 이달 중 현대엔지니어링이 3구역에 ‘힐스테이트 세운’을 분양할 예정이다. 3구역은 지하철 2·3호선 을지로3가역과 맞닿아 있고, 북쪽은 청계천과 맞닿아 있다.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세운지구가 본격 주거지로 재정비된다면 도심의 핵심 주거지역으로 떠오르고, 집값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주택 공급이 부족한 도심에선 한 동(棟)짜리 ‘나홀로 단지’에도 수요가 꾸준히 몰리는 상황이다. 2016년 입주한 중구 순화동 ‘덕수궁 롯데캐슬(296가구)’의 경우 42㎡ 소형주택이 2018년 8월 5억6500만원(3층)에서 지난해 10월 6억7000만원(8층)으로 집값이 1억원 정도 올랐다. 지난해 말 청약접수를 받은 종로구 충신동 ‘힐스테이트 창경궁(181가구)’는 94가구 모집에 5698명이 몰려 최고경쟁률 96대 1(64㎡ 주택형)을 기록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세운지구는 광화문 업무지구까지 출퇴근이 편리한 직주근접 입지기 때문에 이 곳에 주택이 들어선다면 수요가 몰릴 것”이라며 “특히 대형건설사가 분양하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 등 소형 주택의 경우 1~2인 가구 직장인 임차수요를 노린 투자자들 관심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