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17 05:32
[땅집고] 작년 6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입주한 ‘휘경SK뷰’아파트. 이 아파트 전용 59㎡는 분양가가 4억1000만원이었는데, 입주 시점 전세금이 최고 4억1000만원으로 올라 분양가와 차이가 없었다. 입주당시 매매가격은 6억 3000만원 정도였고 올해 5월 현재 실거래가는 8억4500만원(14층)까지 올랐다. 집주인은 세입자 전세금으로 분양대금 100%를 충당하고도 1년 만에 시세 차익 4억원 정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방식이 최근 주택시장에서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아 시세 차익을 얻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신축 아파트를 분양 받아 계약금을 비롯해 집값의 10~20% 정도만 2년 여에 걸쳐 마련하면 입주시점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전세금이 오른다는 조건만 맞으면 일반적인 ‘갭(gap) 투자’보다도 투자금을 줄이면서 신축 아파트의 시세 상승을 고스란히 가질 수 있다.
정부가 신규 분양 아파트 가격 통제에 나서면서 나타난 기현상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 새 아파트 가격을 HUG(주택도시보증공사)를 통해 통제하고 있다. 청약·대출 규제 역시 역대 가장 강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분양에 수요자가 몰리고, 신축 아파트 가격 상승률 역시 기존 아파트보다 훨씬 가파르다. 그 배경에는 이 같은 ‘신축 갭투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축 아파트 분양가 대비 전세가율 90% 육박
서울의 신축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은 기존 아파트보다 훨씬 높다. 직방에 따르면 입주한 지 1년이 안된 서울의 신축 아파트 분양가 대비 전세가율은 86.3%에 달했다. 기존 아파트 전세가율보다 29.6%포인트나 높다. 특히 서울에서 6억~9억원 이하 신축 아파트 분양가 대비 전세가율은 81.6%, 4억원 이하는 90.0%로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신규 아파트에 입주할 만한 자금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도 아파트 청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파트를 분양 받은 후 입주 시점에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분양가 규제로 인해 분양가는 시세보다 저렴하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는 “기존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높아지면서 기존 아파트보다는 신축 아파트 갭투자가 훨씬 낫다”고 말했다.
■ 전세 대출 규제 느슨…6억 이하 아파트값 부채질?
매매 자금 대출보다 훨씬 규제가 느슨한 전세 대출은 이 같은 추세를 더욱 가속화한다는 지적이다. 주택담보대출 LTV(집값 대비 대출금 비중)는 40%로 제한된 것과 달리, 전세 대출엔 별다른 제약이 없다. 서울보증보험 상품을 이용하면 집값의 80%까지, 최대 5억원까지 전세자금 대출이 가능하다. 단, 개인의 채무상황, 소득수준과 신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올해 서울 양천구 신정뉴타운에 분양한 ‘호반써밋목동’ 59㎡(이하 전용면적) 분양가는 5억8000만원이었다. 올해 서울 소형 아파트(59㎡ 이하) 분양가는 강남3구를 제외하면 평균 6억~7억원대 수준이었다. 분양가의 약 70~80%까진 전세금으로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근 서울의 6억원 이하 아파트 값이 급등한 배경에도 전세자금 대출이 있다고 본다. 작년 5월 매매중간가격이 5억3500만원이었던 은평구의 경우 올해 5월 6억1800만원으로 가장 많이 올랐고, 동대문구(5억8000만원→6억2000만원)와 강서구(5억7300만원→6억1150만원)도 같은 기간 매매중간가격이 5억원대에서 6억원대에 진입했다.
함영진 직방 데이터랩장은 “서울의 경우 분양가의 80% 이상을 전세를 활용해 조달할 수 있으며 기존 주택에 비해 새 아파트가 자금조달에 대한 부담이 적다”며 “아직 민간택지분양가상한제 시행 전이라 거주의무기간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갭투자 더 성행할 우려”
전문가들은 앞으로 분양가 상한제까지 시행하면 서울·수도권 분양가격이 더 낮아질 수 있어서 청약 과열이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세금 대출 한도가 매매 대출 한도보다 더 높은 상황에서는 갭 투자자들이 가격이 낮고 수요가 많은 새 아파트 청약에 몰리면서 집값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은 “새 아파트는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강력하기 때문에 자기 자본이 부족하고 실제 거주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무리해서 주택을 분양 받는 경우가 많다”며 “시중 금리가 낮고 유동성이 풍부해 주택매입 대출을 규제하면 전세금이 계속 상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