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15 04:48
“저 건물 너무 예쁜데, 똑같이 생긴 건물 지어봐도 괜찮을까?” “디자인 베낀 ‘짝퉁 건물’은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받습니다.”
흔히 ‘저작권법’이라고 하면 문학 작품이나 음반, 영상 제작물 등을 먼저 떠올린다. 다소 생소하지만 현행법은 건축물에 대한 저작권도 보호하고 있다. 건물 외관 디자인이나 내부 등을 설계한 건축가의 창작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최근 건축물 저작권 위반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선 건물이 있다. 경남 사천 해안관광로에 지은 ‘커피 레(Coffee Leh)’. 2013년 건축주 A씨가 건축사 B씨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2014년 8월 완공했다. 개점 후 지역 주민과 관광객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해안도로를 끼고 있는 이른바 ‘오션뷰’ 카페인데다 평범한 박스형으로 지은 주변 건물과 달리 외관을 곡선으로 처리해 멀리서도 눈길을 확 끌었던 것.
그런데 ‘커피 레’ 건축주 A씨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유명 커피전문점 ‘테라로사’가 저작권 소송을 걸어온 것. 카페를 공장처럼 설계해 인기를 끌었던 테라로사 강릉 본점 건물과 ‘커피 레’ 건물 외관이 복제품 수준으로 똑같이 지어졌다는 이유다. 한마디로 커피 레가 ‘짝퉁 건물’이라는 것. 테라로사 측은 “강릉 본점 건물은 건축전문도서에 실리는 등 건축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며 “건축사인 B씨가 이 같은 디자인을 모를리 없다”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다. 반면 B씨는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커피 레’ 건물을 설계한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현행법이 건축물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지만, 흔한 박스형 건물이라면 저작권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낮다. 예를 들어 천편일률적인 이른바 성냥갑 아파트나 네모난 원룸 건물 등 일반적인 건물은 건축가의 창의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커피 레’가 ‘테라로사’를 모방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판결했다.
‘커피 레’의 규모가 좀 더 크다지만 두 건물을 비교해 보면 유사점이 3가지 정도 있다. ▲외벽과 지붕 슬라브가 곡선으로 이어진 점 ▲건축물 왼쪽 부분의 1~2층 창을 연결한 점 ▲건축물 정면을 전체 유리창으로 시공한 점 등이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구조는 시공하기 어려울 뿐더러 건물 내부의 용도·기능과 무관한 디자인적 요소이므로 저작물로 인정하고 B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2019도9601).
그렇다면 건축주 A씨는 이런 짝퉁 건물에서 카페를 계속 운영해도 될까. 전문가들은 “영업행위 자체는 가능하다”고 본다.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과 별개로 영업 가능 여부를 가릴 때는 ‘부정경쟁방지법’을 어겼는지 따로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커피 레가 테라로사 건물 외관 뿐 아니라 상호·상표·내부시설 등을 비롯해 영업방식까지 베껴 고객들이 두 카페를 혼동할 정도라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카페는 내부 시설이나 영업 방식까지 닮은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테라로사 관계자는 “테라로사 강릉 본점의 경우 본사에서 특별하게 정한 내부 콘셉트 등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