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7 14:28 | 수정 : 2020.06.07 21:54
[땅집고]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던 서울 부동산 시장이 개발 호재로 다시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보유세 과세 기준일(6월1일)이 지나면서 강남에선 급매물이 모두 사라진 가운데, 잠실·용산·목동 등 지역에 개발 호재가 이어지면서 아파트값이 반등하는 추세다. 정부 규제로 서울 집값이 본격 반등하기는 어렵겠지만,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더해지면서 서울 부동산 가격은 꾸준히 우상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7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3% 올랐다. 이는 2주 연속 상승한 수치며, 지난주(0.01%) 대비 상승폭도 커졌다. 한국감정원도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값이 9주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 전환했다는 통계를 내놨다. 최근 강남권(동남부 지역)에서 초고가 아파트 거래가 늘고, 비강남권에선 9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가 증가하면서 서울 전체 집값이 상승세를 탄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권에선 절세 급매물 사라져…최근 GBC·마이스 개발 호재에 집값 더 올라
전문가들은 올해 6월 1일 보유세 부과 기준일이 지난 후 집을 급하게 매도할 이유가 없어진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호가가 올랐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이하 전용면적) 27억원에 팔렸다. 지난달 2일 25억8000만원, 13일 25억3000만원에 각각 거래한 후 집값이 1억2000만~1억7000만원 뛰었다. 지난 2월 24억2000만원에 팔리던 반포동 ‘반포리체’ 84㎡도 약 3개월만인 최근 24억원에 거래됐다.
강남권 대표 재건축 단지인 송파구 잠실동 ‘잠실 주공5단지’도 최근 82㎡가 22억8000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올랐던 지난해 말과 거의 비슷한 금액”이라고 전했다.
최근 강남권에는 개발 호재도 발표됐다. 이달 5일 서울시가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민간투자사업’ 적격성 조사를 완료했다고 밝힌 것. 여기에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강남구 삼성동 옛 한국전력부지에 짓는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 허가를 받으면서 이 일대 대규모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잠실·삼성동 일대의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불법 실거래 기획조사에 착수했다. 서울시도 시장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과열 양상이 포착될 경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등 즉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430건으로 4월(3019건) 대비 13.6%(411건) 늘었다. 실거래 신고 기간이 계약체결 후 30일인 점을 감안하면 5월 거래량은 이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강남권 거래만 보면 강남구가 4월 146건에서 5월 183건, 송파구 132건에서 179건, 서초구 92건에서 122건으로 늘었다.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잠실 마이스 사업이 속도를 낸다는 소식에 집주인들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라며 “앞으로 이 지역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매물을 거둬들이는 상황”이라고 했다. 삼성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현재 GBC 주변 아파트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개발 계획 초기인 6년 전부터 계속 집값이 올라왔다”라며 “아파트뿐 아니라 중소형 빌딩이나 상가주택, 오피스에 관한 문의도 꾸준한 편”이라고 전했다.
■용산은 정비창 부지 개발로, 목동은 재건축 기대감으로 호가 급상승
용산구 부동산 시장도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가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에 아파트 80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하면서다. 다만 정비창 부지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서 허가구역에 속한 지역은 ‘거래절벽’ 현상을 겪고 있고, 구역 지정을 피한 곳은 호가가 급등하고 있는 추세다. 이촌동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최근 이촌동 ‘시범아파트’ 59㎡가 6억6000만원에 팔렸다. 원래는 6억원에 내놔도 안 팔리던 집”이라며 “현재 호가는 6억800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기존 7억원이던 69㎡는 현재 7억8000만원까지 부르는 상태”라고 했다.
재개발 지분을 확보하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팔려는 사람은 없는 상황이다. 이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더라도 대지면적 18㎡ 이하 주택이나 20㎡ 이하 상가는 허가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런 매물은 이미 다 소진되고 없다”라고 했다. 이촌동 한 공인중개사는 “이촌1구역의 경우 대지지분 18㎡ 이하인 곳이 70%에 달한다. 대지지분 13.2㎡짜리 물건이 정비창 계획 발표 전에는 6억50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7억5000만원에도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라며 “이촌1구역 호가가 1억원 정도 오른 상태”라고 전했다.
목동 아파트값도 재건축 기대감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달 5일 ‘목동신시가지5단지’는 양천구청 1차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아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하게 됐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2만6000여가구 중 6단지(1368가구)와 9단지(2030가구)에 이어 세 번째 통과다. 추후 공공기관이 실시하는 2차 안전진단까지 통과하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지난달 5단지 95㎡ 저층 아파트가 17억3000만원에 거래하면서 지난해 10월 비슷한 조건의 매물보다 3000만원 비싸게 팔렸다. 현재 시세는 17억5000만~20억원 수준이다. 지난 4월 9억4000만~10억원에 팔리던 6단지 48㎡은 지난달 10억1700만원에 매매했다. 현재 호가는 11억원 선까지 뛰었다.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안전진단 결과가 나오면서 집주인들이 호가를 올리려고 한다. 워낙 물건이 없는 지역인데 그마저도 다 거둬들인 상황이다”라며 “다음주 6단지가 2차 안전진단을 통과할 경우 전체 단지 가격이 동반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도강·금관구에선 9억원 미만 아파트 ‘풍선효과’
정부가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을 옥죄면서 서울의 9억원 미만 아파트값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서울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실수요와 투자수요 모두 9억원 이하 아파트에 쏠리면서 서울 전체 집값이 9억원에 수렴하고 있을 정도다. 그동안 서울 자치구 중 9억원 이하 주택 비율이 높았던 ‘금관구(금천·관악·구로)’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자치구 중 집값이 가장 많은 오른 곳은 구로구. 구로구 구로동 ‘신도림롯데아파트’ 84㎡가 지난달 말 8억1500만원에 팔렸다. 약 6개월 전인 지난해 11월(7억500만원) 대비 1억1000만원 올랐다. 금천구 독산동 '금천롯데캐슬골드파크1차’ 84㎡는 지난달 9억6500만원에 거래한 후 현재 호가가 10억~11억원까지 오른 상태다. 구로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역세권 신축 아파트 위주로 가격이 많이 뛰었다. 정부가 9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대출 규제를 막으면서 그 이하 가격이던 아파트들이 덩달아 9억원 선까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이제는 저평가된 물건을 찾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소형 재건축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상승세다. 노원구 하계동 ‘청솔아파트’의 59㎡는 지난달 4억5500만원에 매매했다. 올해 3월 4억3400만원에서 2100만원 오른 금액이다. 하계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이 지역 집값이 서울에선 아직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사업으로 주거 여건이 개선되면 집값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서울 집값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기조와 거대 여당의 규제 입법 추진,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분위기 등으로 당분간 크게 반등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최근 강남의 대규모 개발 계획에 불이 지피고 금리 인하와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 등 환경으로 다시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특히 수도권에서 진입을 노리는 대기수요가 항상 존재하는 서울의 경우, 추후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하락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