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5 05:16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 하지만 불황을 이켜내는 상권도 있다. 땅집고는 ‘다시 뛰는 상권’을 통해 불황을 돌파하는 상권의 성공 비결을 소개하고, 지역 상인과 창업자를 응원한다.
[땅집고 2020 다시 뛰는 상권] ‘포스트 망원’을 꿈꾸는 금호동
[땅집고 2020 다시 뛰는 상권] ‘포스트 망원’을 꿈꾸는 금호동
[땅집고]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성동구 금호동. 낡은 주택가 골목에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 앞에 20~30대 남녀 10여명이 모여 있었다. 금호동 일대에서 인기있는 카페 ‘아우푸글렛’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이었다. 20대 여성은 “크로플(크로와상을 와플 기계에 구운 디저트)이 맛있기도 하고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좋아 자주 찾는다”며 “올 때마다 줄을 서지만 별 상관없다”고 말했다. 아우푸글렛 관계자는 “교통이 안 좋아도 카페를 찾는 고객이 많아 코로나 사태가 한창 심각할 때도 늘 대기줄이 있었다”고 말했다.
불과 두 달새 ‘아우푸글렛’ 양 옆으로 새 매장이 1곳씩 들어섰다. 뿐만아니다. 골목 곳곳에 세련된 카페와 맥주집이 자리잡았고, 개업을 위해 공사 중인 곳도 간간히 보였다. 금호동 ‘모아부동산’ 관계자는 “유명 카페 한 두 곳으로 시작해 이제는 금호동 전체가 유명해지면서 근처에 매장을 내고 싶다는 문의가 계속 온다”고 말했다.
금호동 상권은 배후에 주택가가 많은 동네 상권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지역 주민을 제외하면 유동 인구도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서울에서 신규 점포가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상권 중 하나다. 멀리서 일부러 찾는 고객들 덕분에 코로나 사태에도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 임대료가 비싼 한남동이나 신사동 등지에서 이전한 예쁘고 특색있는 점포들이 SNS(소셜미디어)로 손님을 끌어모은다. 일부에서는 홍대 상권에서 확장한 망원동 상권 초기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다.
■ “교통 불편해도 ‘나만 아는 곳’이 핵심 경쟁력”
금호동 일대 유명 맛집과 카페를 찾아가려면 지하철 3호선 금호역이나 5호선 신금호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주차 공간도 거의 없다. 하지만 금호동 일대 점포주들은 확실한 철학이 있다. 바로 ‘나만 아는 곳’을 발굴하고 싶어하는 2030세대의 트렌드를 공략하는 것. 심지어 교통이 불편한 곳을 일부러 고른 경우도 있다. 람빅(벨기에 맥주의 한 종류) 맥주를 주로 파는 ‘쿨쉽’의 매니저는 “실력과 분위기만으로 승부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매장을 냈다”고 말했다.
교통이나 접근성을 우선 순위로 두지 않는 것은 SNS와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홍보수단 때문이다. ‘소울보이’와 ‘아우푸글렛’은 가게 운영진의 지인인 일부 연예인들이 방문해 SNS로 홍보하면서 손님을 불러모았다. ‘쇼콜라디에’는 일본 유명 블로거가 게시물을 올린 덕에 일본 관광객이 많다. 금남시장 안쪽 칵테일바 ‘sip’은 간판도 없이 운영하지만 매일 만석이다.
이런 영업 방식이 가능한 것은 임대료가 싼 것도 이유다. 금호동 대로변을 제외한 골목 안쪽 점(30㎡ 내외)의 월 임대료는 30만~50만원이다. 위치가 좋은 곳도 아직 월세 100만원 이하인 곳이 많다. 타코전문점 ‘타코카나스타’ 관계자는 “월세가 3.3㎡당 10만원 꼴인데 과거 강남구 신사동에서 운영했던 매장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 강남 가깝고 소비 여력 높은 배후 수요 탄탄
금호동에서 한강 다리(동호대교·한남대교) 하나만 건너면 강남구 신사동과 압구정동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주변이 재개발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입주민 소득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금호동 상권의 제품 단가는 비싸고 고급스런 취향을 가진 점포가 많다. ‘소울보이’, 주얼리 매장 ‘메종루포’, 수제초콜릿 전문점 ‘쇼콜라디아’, 브런치카페 ‘37.5’, 테이블 바 ‘sip’, 베트남음식점 ‘베쌀집’ 등이다.
금호동의 현재 모습이 유명 골목 상권 중 하나인 망원동 초기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망원동 상권은 초기에 예쁜 카페, 특색있는 식당 등이 2030세대의 SNS 게시물 홍보를 통해 알려졌고 ‘망리단길’이란 별칭을 얻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홍대 상권에 들어오려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월세가 싼 곳을 찾다가 망원동으로 확장한 것처럼, 금호동에도 주변 신사동이나 청담동 한남동 등지에서 옮겨온 경우가 많다.
금호동 상권의 한계도 있다. 점포와 낡은 주택이 혼재해 쓸만한 공간 자체가 많지 않고, 건물 임차인과 주택 모두 장기 계약이 많아 쉽게 매장이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상권이 크게 확장하기 어렵다. 상권이 활성화하면 임대료가 치솟아 기존 상인들이 밀려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금호동 상권에서 우려보다는 성장성을 찾는 전망이 많다. 상가 전문 플랫폼 ‘상가의 신’ 권강수 대표는 “지난 20여년 정도 골목 상권이 뜨고 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건물주와 상인이 공생하기도 하고, 시장 분위기도 임차인이 ‘갑’으로 바뀌었다”며 “금호동도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 상권으로 살길을 찾으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