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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망했다" 연이은 폭격에 결국 고꾸라진 이태원

    입력 : 2020.05.22 04:42

    [땅집고] 지난 13일 오후 7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로에 있는 바(bar) ‘프로스트’ 앞. 평소라면 젊은이들이 식당과 주점을 찾기 위해 이태원 골목을 누빌 시간이었지만, 이날 거리는 텅텅 비었다. 조용했다. 마치 촬영이 끝나 버려진 영화 세트장 같았다. 이태원 클럽 주변을 취재한지30여분만에 대화 소리가 처음 들렸다. 누구인지 봤더니, 이들은 서로 다른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이날부터 영업을 중단했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클럽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 감염지라고 온 동네 소문이 났는데 누가 찾아오겠느냐”며 “언제 다시 가게를 열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폐업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땅집고]한산한 이태원 유흥주점 거리./전현희 기자

    서울시가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가 집단 발생한 이태원 일대 유흥주점에 영업 중단 명령을 내린 지난 8일 이후 이태원은 유령 거리가 됐다.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턴 호텔은 영업을 하고 있지만 로비에는 경비원과 접수 직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직원은 “지난 3~4월에 대구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다 빠져나가서 정말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이태원역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해밀턴 호텔이 당분간 폐쇄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며 “호텔 직원들 일자리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 “이태원 상권, 올 5월은 사상 최악 불황기”

    이태원 클럽이 밀집한 곳은 해밀턴 호텔 뒤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폭탄을 맞은 것은 주변 일반 상점도 마찬가지다. 해밀턴 호텔 건너편 퀴논길 맛집 곳곳에는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이태원의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유흥주점에 방문하는 고객이 줄면서 유흥과 상관없는 퀴논길 상권까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땅집고]평소 새벽 이용이 잦던 '해밀턴 호텔' 화장실 문 앞에 이용시간 제한 안내문이 붙어있다./전현희 기자

    ■ 미군기지 이전 후 이미 위기 시작

    이태원 상권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위기였다. 이태원 상권 침체는 2018년 6월 용산 미군기지가 경기 평택시로 완전히 이전하면서 본격화했다. 3만여 명에 달하던 미군이 떠나면서 미군과 그 가족들 대상 배후상권이자 유흥지 역할을 했던 이태원 상권도 타격을 입었다. 오래 전부터 미군 상대로 장사하던 신발과 옷가게는 타격이 심각했다.

    이미 작년 말 이태원 일대 상가 4곳 중 1곳은 공실 상태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이태원역 일대 공실률은 26.5%. 서울 모든 지하철 역세권 중 가장 높았다. 이태원 상권 공실률은 미군기지가 떠나기 직전인 2017년 2분기만 해도 14.9%였다. 1년 만에 12%포인트 급등했다. 중국, 일본과 무역 마찰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 침체 늪에 빠진 명동(2019년 4분기 기준 8.9%)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주점이나 클럽 같은 ‘밤 상권’은 멀리서 찾아오는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버텨줬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이마저 완전히 끊어졌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로 나온 상가의 60% 이상이 6개월 넘게 공실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태원동 K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해밀튼 호텔 인근 빈 점포들은 작년 말부터 이미 월세를 100만 원정도 내렸는데도 입점하겠다는 곳이 없다”며 “건물주들은 한남뉴타운과 용산공원이 개발되기만 기다리는데, 그게 언제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땅집고]이태원 상권 공실률(%)./한국감정원

    ■ 당분간 불황 불가피…결국 상권 개성 회복해야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이태원 상권은 유흥주점뿐 아니라 음식점, 바 등도 활기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유흥주점으로 분류되는 이태원 클럽이 영업을 못하면 적어도 한 달 정도 이태원 상권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이미 쇠락하고 있던 이태원이 코로나 사태와 관계 없이 경쟁력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도 있다. 미군 기지가 철수하고 군인과 기지 근무자들이 사라지면서 서울에서 가장 이국적인 상권이라는 특색이 사라지면서 이태원을 구태여 찾아올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 상권은 침체했지만 임대료는 여전히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도 문제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이태원 상가의 경우 1층 10평(33㎡) 점포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80만~200만 원, 20평(66㎡)이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80만~400만원 수준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같은 면적 상가와 비슷하다. 건물주들이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경기 침체가 더 길어지고 임차인을 찾지 못하면 임대료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직접적으로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야 그나마 이태원 상권이 살아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태원 상가에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업체 대신 새로운 놀거리, 볼거리를 조성해야 상권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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