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4.04 05:44
[부동산 상식] ‘착한 임대인 운동’과 함께 관심받는 ‘차임증감청구권’이란?
[땅집고] “요즘 착한 임대인 운동이 확산된다고 해서 건물주인에게 혹시 임대료를 2~3달간 깎아주면 안되겠느냐고 요청했더니, 임대료 인하는 커녕 바로 월세를 안내면 연체이자 물리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어요.”
전시 이벤트 전문업체인 A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각종 이벤트, 전시행사가 전면 중단돼 사실상 올해 매출이 제로(0)다. 직원들을 절반씩 나눠 무급휴직을 실시하고 있던 이 회사의 정모 대표는 건물주에게 임대료 인하를 요청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며 답답함을 털어놨다.
국가적 재난 사태로 영업소득이 줄었다는 이유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기존에 합의한 임대료를 강제로 감액하는 것이 가능할까.
일단 임대차 계약 내용은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바꿀 수 없다. 계약으로 체결된 임대료는 원칙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동의해야 재조정할 수 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처럼 갑작스러운 경제 사정 변화로 기존에 합의한 임대료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인정될 경우엔 사정이 달라진다.
이럴 때 임차인이 자구책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이 이른바 ‘차임증감청구권’이다. 차임증감청구권이란 조세 부담 증가, 경제사정 변동으로 약속한 임대료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건물주인은 증액을 청구할 수 있고, 소상공인은 감액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1조·민법 제628조)를 말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극심한 경기 침체가 ‘경제 사정의 변동’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임증감청구권은 ‘경제 사정이 변동’되었다는 사실이나 ‘조세부담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적용될 수 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차임증감청구시 입증 요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아 그동안 흔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다”며 “다만 지금처럼 코로나19가 창궐한 상황에서는 경제사정 변동에 따른 임대료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차인이 감액을 요청했지만 임대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임대료 인하 청구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소송이 진행되면 영업 특성상 코로나19 사태와 관련이 있는지, 관련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송결과 임대료 재조정이 옳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임차인이 감액을 최초로 청구한 때부터 임대료가 조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경제사정에 큰 변동이 생겼음’을 고려해 세입자의 감액청구권이 인정된 사례가 있다. 2000년 서울지법 민사단독25부는 1998년 6개월 간 서울 신사동 S빌딩 2개 층을 빌렸던 H사가 “IMF 사태로 주변 건물의 임차료가 폭락한 만큼 월세를 깎아 달라”며 낸 차임감액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전문감정인의 감정결과와 당시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월세가 40% 이상 떨어졌고 주변 상권이 크게 위축돼 법률상 감액청구권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감액청구를 하게 된 경위나 월세가 폭락했다가 다시 오른 점 등을 감안할 때 적정 월세는 1200만원보다 19.2% 싼 970만원이 합당하기 때문에 피고는 차액 57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임대료 재조정이 적절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4가지 요건을 판례를 통해 마련해 놓은 상태다. ▲계약 당시 기초가 됐던 사정이 현저하게 변경됐을 것 ▲사정변경을 당사자들이 예견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 없었을 것 ▲사정변경이 당사자들의 책임 없는 사유로 발생했을 것 ▲당초의 계약 내용을 유지하는 것이 신의칙상 현저히 부당할 것 등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임차료 인하를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전문가들은 차임증감청구권이 반드시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 없고, ‘착한 임대인 운동’을 법으로 강제할 사항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최광석 로티스 부동산전문변호사는 “임차인이 코로나19로 도산에 이를 지경이 됐고, 이런 경우가 해당 지역에 일반적이라면 소송에서 인용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하지만 소송에 들어가면 법원에서 어느 수준으로 감면받아야 할지 감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송비용 외에 추가적으로 최소 40만~50만원이 드는데 이를 감당하면서까지 청구권을 행사하려는 소상공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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