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3.01 03:56
[땅집고] 정부가 18번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실패하자, 19번째 부동산 대책을 지난 20일 발표했다. 경기 수원 영통·권선·장안구와 안양 만안구, 의왕시를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하고, 이들을 포함한 조정지역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집값이 더 가파르게 상승한 일부 지역이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주택시장에선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규제를 최소화한 것”, “부동산 대책에 정치적인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인 이유로 규제를 피했던 지역의 집값이 총선 이후에도 계속 불안정할 경우 20번째 부동산 대책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전·용인 집값 가파르게 올랐는데 안양과 의왕이 왜?
부동산 대책 발표 전, 업계에서는 ‘수·용·성(수원·용인·성남)’이 집중 규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에 집중된 규제로 인한 풍선효과로 집값이 급등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그러나 수·용·성에서 ‘2·20 대책’ 규제에 포함된 것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수원 영통구·권선구·장안구 뿐이었다. 수·용·성 지역구 13곳 중 9곳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 눈치를 보느라 이 지역 규제 강도를 낮췄다는 뒷말이 나온다.
용인 수지·기흥구가 대표적이다. 이 두 곳은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아파트 매매가격이 각각 5.7%, 3.6%씩 올라 수원 다음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이미 조정대상지역인 탓에 투기과열지구 등 더 센 규제 지역으로 지정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두 곳 모두 추가 규제에서 제외됐다.
대전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이후 6월부터 최근까지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 중 하나다. 이 기간 대전 유성구(16.7%), 중구(16.2%) 주택 매매가격 변동률은 전국에서 과천(21.4%), 성남 분당구(19.6%), 광명시(16.9%)에 이어 4, 5번째로 높았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서는 규제 지역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대전은 7개의 선거구가 있는데,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양분하고 있어 이번 총선에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안양 만안구와 의왕시 등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여당 실세 국회의원이 조정대상지정을 막기 위해 ‘분투’했던 지역이다.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안양 만안구와 의왕시의 집값은 각각 2.43%, 1.93% 상승했다. 대전(2.56%)과 화성(2.56%)에 비하면 상승폭은 둔했다. 안양시 만안구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다. 이 의원은 대책 발표 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만안구를 조정대상지역에서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자신의 지역구가 부동산 규제를 피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는 것을 홍보한 셈이다.
안양 만안구에 사는 50대 A씨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지역도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만안구가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조정대상지역에 포함)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나와서 그런지 이번 대책은 지금껏 정부가 서울을 대상으로 냈던 규제들에 비해 범위나 강도가 약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셈법 고려한 핀셋 규제…총선 끝나고 또?
정치적 셈법을 고려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까닭에 전문가들은 총선 이후 규제를 비껴간 지역과 풍선효과가 나타날 지역을 타깃으로 한 ‘20번째 대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20번째 규제 대상 지역의 이름이 거론된다. 집값이 가파르게 올랐는데도 추가 규제를 피한 대전이나 용인 등과 풍선효과가 예상되는 ‘안·시·성(안산·시흥·화성), 남·산·광(남양주·산본·광명)’ 등이 유력후보다. 2월 들어 집값이 크게 오른 인천 송도도 규제를 피하면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인천 송도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대책 발표 이후 외부 갭투자 문의는 많으나 현재 매물은 거의 없다”며 “이 추세라면 송도도 조만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흥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도 “심상치 않은 대전 집값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특정 지역을 콕 찍어 추후 규제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본적인 정책 방향의 ‘습관적 부동산 대책’이 계속 나오는 이상 부작용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규제 지역이 일시적 관망세를 보이는 사이 부동자금이 비규제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도 현 정권의 두더지 잡기 식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학습능력이 쌓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순 규제로는 또 다른 풍선효과를 낳을 뿐”이라며 “20번째 대책도 곧나오겠지만 결과는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