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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도 안 와요" 추락할 대로 추락한 압구정로데오

    입력 : 2020.02.25 04:11

    [벼랑 끝 상권] 명동과 어깨 나란히하던 압구정로데오의 추락

    [땅집고] 압구정로데오 중심거리 초입 건물이 나란히 빈 점포인 상태다. /이나영 인턴기자

    [땅집고] 압구정로데오 중심거리. /네이버 지도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일명 ‘압구정로데오거리’. 압구정로 50길에서 선릉로 157길에 이르는 'ㄴ'자 거리가 압구정로데오의 중심이다.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초입부터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로데오거리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자, 지상 2층 건물이 통째 비었거나 이웃한 건물이 나란히 공실(空室)인 경우도 보였다. 지상 2층과 3층은 영업 중인 점포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한낮은 물론 저녁에도 거리가 썰렁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서울 명동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잘 나갔던 압구정동 상권의 추락이 계속되고 있다. 과거 로데오거리를 대표하던 유명 의류 브랜드 상점은 대부분 철수했다. 새로 입점한 카페나 점포도 영업 부진으로 잇따라 폐업했다. 최근엔 경기 침체 여파까지 겹치며 점포 임대료와 권리금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땅집고] 압구정로데오거리 초입. 저녁 시간인데도 한산하다. /이나영 인턴기자

    ■ “권리금 3억원에서 2000만원 이하로 떨어져”

    압구정로데오 상권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90년대초반이다. 당시 외국 유학 후 귀국한 젊은이들로부터 전파된 이국적 취향과 고급스런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압구정동의 한 점포주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입 의류나 고가 명품은 압구정 상권이 아니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면서 “엑스(X)세대나 야타족, 오렌지족 같은 젊은이를 상대로 한 유흥·문화 시설도 이곳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찾은 압구정로데오에는 5곳 걸러 1곳꼴로 점포가 비어있거나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잘 나갈 때에는 권리금을 (전용면적 20평 기준) 3억까지 불렀는데, 이젠 대부분 점포에 권리금이 없거나 2000만원 이하 소액”이라며 “1~2년 전과 비교하면 월세를 내리지 않은 가게가 없다”고 말했다.

    한 때 유명 레스토랑과 카페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옛 명성을 되찾는듯한 기미도 보였다. 2016년엔 압구정로데오 길목에서 전 세계 최대 규모로 만화 캐릭터 ‘무민’ 카페가 문을 열기도 했다. 실제로 SNS(소셜미디어)에 소개되며 기대를 모았던 이곳 역시 2018년 폐점해 2년째 공실이다.

    [땅집고] 압구정로데오 상가 월세 변동 추이. /소상공인진흥회 상권분석서비스

    상권 침체가 길어지면서 임대료는 올 들어 더욱 떨어지는 추세다. 현재 압구정로데오 메인거리의 전용면적 22평 기준 점포가 보증금 7000만 원에 작년까지 월 700만 원 받던 것을 500만 원으로 낮췄다. 도로변 전용면적 17평 상가도 작년 보증금 7000만 원·월세 750만 원이었던 매물이 현재 600만 원에 나와 있다. 소상공인진흥회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압구정 상권의 임대료 시세는 중대형 상가가 1㎡ 당 평균 5만6000원으로 사당(5만7800원)이나 신촌(5만5600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 유동인구 없는데 지역 주민들조차 외면

    그렇다면 압구정로데오는 왜 이렇게 추락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세가지를 꼽는다. 유동인구가 크게 부족하고 노후 건물이 많은데다 주요 임차인이던 의류 매장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압구정로데오는 구조적으로 유동인구와 상주인구가 부족하다. 인근에 고소득 부유층이 많이 사는 압구정현대·한양 아파트가 있지만 이들은 로데오거리가 아닌 압구정갤러리아나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긴다. 주변에 기업 본사나 오피스 상주 인구가 없는 것도 문제다.

    압구정로데오에 들어선 건물은 대부분 2000년대 이전에 지어져 낡았다. 하지만 고도제한에 걸려 재건축을 해도 큰 변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2019년 1월 압구정로 일대가 ‘역사문화미관지구’에서 ‘시가지경관지구’로 지정되면서 지상 4층에서 6층으로 층수 제한이 완화됐지만 아직도 규제가 촘촘하다.

    [땅집고] 유명 브랜드 점포 자리였던 곳이 나란히 공실 상태다. /이나영 인턴기자

    전문가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유명 브랜드 매장만 입점해 특색이 없다는 점을 압구정로데오 쇠락의 주 요인이라고 본다. 문제는 유명 브랜드 매장들조차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 브랜드 매장이 나가면서 건물이 통째로 비어있는 곳도 있다. 압구정로데오에서 40여년간 철물점을 운영 중인 상인은 “다들 월세도 못 내고 망해서 나간다”면서 “장사가 안 된 지는 한참 됐는데 해가 갈수록 오는 손님이 줄어든다”고 했다.

    ■ “지역 친화적 아이템으로 대단지·부촌 아파트 강점 살려야”

    [땅집고] 세계 최대 규모의 만화 캐릭터 '무민' 카페가 오랫동안 방치돼 있다. /이나영 인턴기자

    압구정로데오가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주요 임차인이던 의류 등 소매품점이 시장을 온라인에 빼앗겨 버린 탓도 크다. 여기에 인접한 삼성동(스타필드 코엑스몰)이나 잠실(롯데월드몰)에 대형 상권이 버티고 있는 것도 악재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권리금을 없애고 임대료를 파격적으로 깎아줘도 한번 공실이 크게 나면 회복이 어렵다”면서 “동네 땅값이 워낙 비싸 임대료를 낮추는데도 한계가 있는 반면 공실률이 높은 상권에 들어오려는 임차인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압구정로데오가 침체를 벗어나려면 상권이 몰락했다는 인식부터 없애는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압구정현대·한양아파트라는 배후 수요의 강점을 살리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을지로처럼 오랜 침체를 겪은 후에도 새롭고 ‘힙’한 가게가 많다고 소문이 나 되살아나는 상권도 있다”며 “우선은 수제 햄버거·1인 가정식 등 차별성을 지니며 배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점포가 좋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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