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2.14 04:50
서울 영등포구에 시세 8억3500만원 짜리 59㎡(이하 전용면적)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렸던 강모(40)씨. 아이가 자라면서 같은 단지에 있는 더 큰 주택형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다가 고민이 생겼다. 84㎡는 매매가격이 9억3000만원으로 1억원 정도 비싸 자금이 모자랐다. 강씨는 고민 끝에 같은 단지 73㎡로 이사를 결정했다. 지금 사는 59㎡와 방 갯수는 같아도 각 방이 넓어져 세 식구가 살기에 충분해 보였다. 현재 집과 매매가격 차이는 5000만원 정도로 84㎡보다 부담이 절반가량 줄었다.
그동안 아파트 평면은 소형은 59㎡, 중형은 84㎡, 대형은 114㎡이 대세였다. 법적으로 이 크기로 지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건설사들은 아파트를 지을 때 3개 넓이를 기준 삼아 아파트를 지어 공급했고, 소비자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과거 공급면적과 ‘평’을 단위로 쓰던 시설 25평, 33평대, 44평이 이 크기로 남았다. 하지만 최근 주택시장에선 소형과 중형 사이의 60~70㎡ 대 ‘준 중형’ 주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아이가 없거나 하나 뿐인 2~3인 가족이 살기에 딱 적당한 면적과 가격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이 면적의 주택은 전형적인 59·84㎡ 사이에 끼어 있어 ‘틈새평형’이라고도 불린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에서 주택형이 61∼85㎡인 주택형의 거래량은 총 7만8691가구를 나타냈다. 2018년 1월에 기록한 거래량(7만6160가구)을 경신해 2006년 관련 통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역대 최대였다. 이 크기의 분양 가구 수 역시 2018년 17만1782가구에서 작년 19만596가구로 10.95% 증가했다.
■ 평균 가족 구성원 수 2.5명 시대…평균 주택형 개념도 변화하는 중
소형, 중형 아파트 면적에 대한 기준은 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까지는 59·84㎡ 면적의 표준이었다. ‘국민주택’형으로 불리는 85㎡의 경우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을 만들 때 등장한 개념으로 당시에는 5인 가족의 적정 주거면적을 1인당 5평으로 보고 25평, 85㎡로 산정했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이 국민주택형이 각종 세제 혜택의 기준이 되면서 84㎡ 가구 공급이 늘었다.
하지만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2018년 평균 가구원수는 2.4명으로 1990년대 대비 절반으로 감소했다. 2027년까지는 2~3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김광석 리얼모빌리티 대표는 “2~3인 가구에게는 59㎡가 너무 작고 84㎡의 경우 다소 크다”며 “60~70㎡대 크기는 공간 활용만 잘하면 2~3인 가족이 살기 좋은 주택이 될 수 있는데, 84㎡보다 가격부담이 덜해 이 크기의 주택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
■ 발코니 등 알짜공간 활용하면, 2~3인 가구에게 70㎡가 안성맞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용 60~70㎡는 드레스룸, 발코니 확장 등 알짜공간 활용을 통해 실거주에도 효율적이지만,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70㎡대 아파트 인기가 높아진 것은 서비스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는 업계 트렌드와도 관련있다. 건설사들은 최근 분양 단지에 발코니, 다락, 테라스 등의 서비스면적을 확보해 같은 전용면적에서 더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구성한다. 4베이(4bay) 구조의 경우 거실과 방이 한쪽으로 전면 배치돼 3베이(3bay)보다 서비스면적이 크게 늘어난다. 과거의 전용 84㎡ 주택형과 비교해 한 사람의 주거 면적을 크게 줄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특히 준중형 주택에 테라스 등 서비스 면적을 적용한 주택은 분양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다. 작년 11월 분양한 서울 강남 대치동 ‘르엘대치’(대치구마을 2지구 재건축)는 강남에서 역대 최고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그중 테라스가 딸린 전용면적 77T㎡ 주택형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1가구만 모집했는데 461명이 청약을 신청했다. 또 50㎡대 주택형중 테라스가 있는 55T㎡도 청약 경쟁률이 332대1로 주택형 중 두번째로 높았다.
이런 테라스형이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서비스면적은 훨씬 넓지만 전용면적은 기존 59·84㎡보다 4~7㎡ 작아 분양가 총액이 저렴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55T㎡의 경우 분양가 총액이 11억2400만원으로 59㎡(11억9400만원)보다 7000만원정도 저렴했다. 77T㎡는 분양가가 16억100만원으로 비슷한 시기 롯데건설이 강남권에 분양한 ‘르엘 신반포 센트럴’ 84㎡ 분양가(최고 16억9000만원)보다 9000만원 낮았다. 이 아파트를 분양한 롯데건설 관계자는 “르엘 대치의 주택형은 전형적인 59·84㎡ 중심의 평면을 피해 총 6개 주택형(55T㎡·59㎡·77T㎡·77A㎡·77B㎡)으로 구성했다”며 “최근 몇 년간 마케팅 분석결과 틈새 평면의 수요가 높아진다고 판단해 이 크기 아파트 공급을 더 늘리고 평면 구성도 다양화했다”고 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연구원은 “그동안에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가구원수에 관계없이도 보다 넓은 주택에 거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준중형 주택 선호도가 굉장히 떨어졌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건설사들이 설계를 잘해서 준중형 아파트도 공간활용의 이점이 커졌고, 자녀가 하나인 가구나 자녀가 아예 없는 가구의 경우 면적이나 가격 측면에서 가성비가 있다고 평가되고 있어 앞으로 틈새평면 아파트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