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돈은 없고, 집은 사야겠고…노도강에 부는 '갭투자' 바람

    입력 : 2020.02.10 05:33

    [땅집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휴먼시아2단지’ 인근의 R 중개업소에는 최근 ‘전세 낀 매물이 있느냐’는 전화를 하루에 한 통 꼴로 받는다. 이 아파트(전용 78㎡) 매매 시세는 4억7000만원, 전세금은 3억2000만원으로 매매가와 전세금의 ‘갭(gap)’이 1억5000만원 정도다. 이 중개업소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대출·세금 규제 탓에 매매보다는 전세금이 더 오르기 시작했고, 그러자 어떻게 알았는지 갭 투자 문의가 늘었다”며 “작년 말 이후로는 매수자 30~40% 정도가 갭 투자자였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와 노원·도봉·강북등 외곽과 수도권 일대에서 ‘갭 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갭 투자는 매매가와 전세보증금 차액 정도만으로 집에 투자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방식이다. 정부는 갭 투자가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집을 살 때 대출 한도를 줄이고, 세금을 징벌적으로 부과하는 대책을 쏟아낸 결과 전세금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갭’이 1억원 내외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시 갭 투자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고가 주택 규제를 전부 피할 수 있는 매매가격 9억원 이하 아파트들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땅집고]부동산 갭투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조선DB.


    ■ “대출 막혀서 새 아파트는 꿈도 못꾸고….”

    서울에 사는 무주택 직장인 A(31)씨는 요즘 매일같이 도봉구·관악구 등 집값이 저렴한 지역에서 아파트 매물을 알아보고 있다. 관심 있는 아파트 중 하나인 도봉구 창동 B아파트(전용 69㎡)의 현재 매매 시세는 2억4500만원. 준공 22년차에 교통이 불편하고 가구 수도 작아 지난해 가격 상승기에도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A씨가 주목하는 점은 이 아파트 전세 시세다. 작년 7월과 비교해 전세 실거래 보증금이 3000만원 정도 올라 작년 말 1억8000만원이었다. A씨는 “이 아파트를 전세 끼고 사면 7000만~8000만원 정도면 가능해 고민하고 있다”며 “무주택 상태로 지내는 게 불안해서 집을 알아 보고는 있는데, 내가 갭투자를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땅집고]서울시 갭(매매가격-전세금)이 1억원 내외인 아파트 목록.

    통상 2013~2018년 서울이 집값 상승기를 거치는 동안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금 비율)이 낮아져 서울 핵심 지역에서 갭 투자 물건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서울에서 갭(매매가격-전세금) 1억원 이하의 아파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이나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수원시 등에 아직도 입주 15~25년 정도의 소규모 아파트를 중심으로 ‘1억원 내외 갭’ 아파트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런 단지에 최근 투자 문의가 늘어난다. 특히 A씨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새 아파트를 사기에는 자금이 부족하고, 높아진 청약 문턱을 넘기에 가점도 부족한 무주택자가 불안감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았던 단지들도, 전세는 전반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작년 하반기 이후 ‘갭’이 더욱 줄어든 경우가 많다. 노원구 계동 주공2단지 아파트 전용 38㎡는 매매 최고가가 2억2500만원이고 전세 최고가가 1억3500만원(갭이 9000만원)이다. 경기권에서는 역세권 단지를 중심으로 갭투자가 비교적 활발하다. 수원시 영통구 청명역 인근에 있는 ‘황골마을주공2단지’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작년 여름에 비해 거래량이 늘었다”며 “월 20~30건 정도 갭투자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규제 비껴간 9억이하 아파트에 쏠리는 갭투자 수요

    매매가격이 ‘9억원 이하’인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12·16 대책의 새로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정부가 갭투자를 근절하겠다며 도입한 1주택자 전세대출 금지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9억원 넘는 아파트 1채를 가지고 있을 경우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기존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사람이 9억원 넘는 아파트를 사면 금융권에서 대출을 회수한다. 하지만, 9억원 이하의 경우 이 같은 문제가 없어서 기존처럼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산 후, 자신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투자자들이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았던 아파트들을 골라 투자하는 이유는 과거 사례로 보아 ‘서울이나 수도권 주요 입지 아파트는 언젠가 오른다’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갭 투자가 과거처럼 주택 여러채를 갭 투자로 사는 ‘투기형 갭 투자’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박원갑 KB 부동산 전문위원은 “정부가 부동산 규제와 대책을 쏟아내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와 양도세 중과세 제도를 강화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갭 투자가 확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실수요 차원에서 전세로 살면서 9억원 이하 주택 한채를 전세를 끼고 사는 것은 정상적인 투자 범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인턴기자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