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2.09 16:19 | 수정 : 2020.02.09 16:23
[땅집고] 부동산 실제 소유주가 남의 이름을 빌려 부동산을 등기한 경우,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원 소유주에게 부동산을 돌려주지 않아도 횡령죄를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남의 이름으로 등기한 것 자체가 불법이어서 보호해 줄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9일 부동산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김미리 부장판사)는 지난 7일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07년 B씨 부부에게 명의를 빌려줬고, B씨 부부는 A씨 이름으로 부동산을 등기했다. 이후 B씨 부부가 사망하자 자녀인 C씨는 A씨에게 부동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등기할 때 이름만 빌렸을 뿐 부동산 실제 소유권은 상속자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A씨는 부동산 반환을 거부했고, 검찰은 A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016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016년 당시 “부동산을 매입한 실제 소유자가 부동산실명법을 어기고 타인 이름을 빌려 등기하는 이른바 ‘중간생략 등기형 명의신탁’을 하면 이름을 빌려준 사람이 부동산을 멋대로 처분해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동산 명의신탁 자체가 불법이어서 두 사람 사이에 '믿고 맡겼다'는 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이가 반환을 거부할 경우 적용하는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횡령죄의 본질은 신임관계에 기초해 위탁된 타인의 물건을 위법하게 취득하는 데 있다”며 “그 위탁 신임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으로 한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동산실명법에 반해 사법적으로 무효일 뿐만 아니라 부동산실명법을 어긴 불법적인 관계에 불과한 '양자 간 명의신탁' 약정 등은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것이 아니다”며 “명의수탁자 역시 횡령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