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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비싸 오피스텔 샀는데…졸지에 '월세 난민' 신세

    입력 : 2020.02.01 05:27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서 오피스텔로 내집 마련해보겠다고 계약했습니다. 선납 할인해준다고 해서 대출받아 잔금까지 다 냈는데, 오피스텔 완공이 1년 넘게 미뤄지고 있어요. 은행에서 대출이자 내라고 계속 전화가 와서 밤에 잠도 못 자고 너무 괴롭습니다.”, “(오피스텔) 준공일에 맞춰 결혼까지 했는데,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인생에 한 번뿐인 신혼을 아직까지도 월세방 전전하면서 거지처럼 살고 있습니다.”

    [땅집고] 대구 동성로 다인로얄팰리스 수분양자들이 다인건설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해자커뮤니티


    울산 남구 달동 번영사거리에 있는 ‘울산번영로 로얄팰리스(844실)’ 오피스텔. 당초 지난해 3월 입주 예정이었지만, 2018년 12월부터 공사가 중단돼 대로변의 ‘유령 건물’이 됐다. 대구 중구 하서동에 있는 ‘대구동성로 로얄팰리스(713실)’도 비슷한 상황이다. 2018년 말 공사가 멈춰 입주예정일(2019년 4월)을 9개월이나 넘겼다. 지난해 6월 입주 예정이었던 경남 양산 물금신도시 ‘다인로얄팰리스 물금1~2차(1080실)’도 공정률 70% 정도에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문제는 이 오피스텔들이 모두 한 건설사를 통해 지어졌다는 것. ‘다인건설’이 2016~2017년 쯤 분양해 2018~2019년 완공할 예정이었던 전국 곳곳의 오피스텔들이 일제히 공사를 멈췄다. 대구, 부산, 양산, 울산 등 5~6곳이다. 업계에선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보다 건설경기가 악화하면서 회사가 자금난에 빠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돈 흐름이 막히면서 소위 ‘돌려막기 분양’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말이 나온다.

    [땅집고] 경남 양산 다인로얄팰리스 물금1차 오피스텔 공사가 중단됐다. /네이버 로드뷰

    가장 큰 피해자는 오피스텔을 분양받은 사람들이다. 입주 날짜에 맞춰 기존 주택을 처분하거나 전세 계약을 종료했는데, 공사가 멈추는 바람에 ‘월세 난민’이 됐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계약자들이 수두룩하다. 원래 중도금 무이자 대출을 조건으로 분양받았는데, 다인건설이 자금난으로 대출이자를 납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경남 양산 ‘다인로얄팰리스 물금1차’를 분양받은 A씨는 “지난해 11월 금융기관으로부터 중도금대출 이자를 계속 연체하면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신용카드 정지 등 금융거래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문자를 받았다”라며 “다인건설에서는 일단 계약자가 납부하면 추후에 환불해주겠다고만 한다”라고 말했다.

    [땅집고] 현행법상 오피스텔은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 있다. /HUG 홈페이지 캡쳐

    [땅집고]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국가법령정보센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파트와 달리 오피스텔은 분양보증에 가입할 의무가 없어서다. 현행법상 오피스텔을 분양할 때는 ‘주택법’이 아니라 ‘건축물 분양에 관한 법률’을 따른다. 이 법의 5조에선 시행사가 ▲신탁회사와 신탁계약 및 대리사무계약을 맺거나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은 경우 오피스텔 분양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법이 이렇다보니 돈을 들여 분양보증을 받기보다는 신탁사와 계약을 맺는 시행사가 대부분이다. 신탁사가 분양대금 징수 및 집행만 해주는 식이다.

    주택법 적용을 받는 일반 아파트는 분양 보증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건설사 부도 등으로 공사가 중단되더라도 분양 보증에 따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다른 건설사를 지정해 공사를 다시 재개한다. 공사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는 있어도 아예 입주를 못하는 상황까지는 벌어지지는 않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시행·시공사가 자금 상황이 어려워지고 부도가 나면 아예 입주를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땅집고] 전국 오피스텔 입주량 및 수익률 추이. /부동산114

    전문가들은 ‘다인건설 사태’가 전국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전국 오피스텔 분양·입주 물량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오르면서 공급과잉과 수익률 하락 현상이 나타나자, 미분양 물량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분양한 전국 오피스텔 68곳 중 47곳이 청약 미달을 겪었다. 비율로 따지면 70% 정도가 미분양됐다. 2019년 4월 대구 ‘테크노폴리스 줌시티’는 574실을 분양하는 데 청약한 사람은 9명 뿐이었다. 서울 도봉구 ‘방학 신화하니엘시티’은 315실에 3건, 안산 ‘월피 마스터큐브’는 308실에 3건이었다.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선 계약자들이 납부하는 계약금이나 중도금도 줄어들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공사를 진행하다보면 건설사에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고 공사를 중단하거나 심각한 경우 부도가 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오피스텔을 짓는 건설사는 대형 건설사가 아니라 중소형 건설사도 많기 때문에 자금 조달 여력이 충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땅집고] 연도별 오피스텔 분양보증 실적. /HUG

    계약자들이 이를 극단적인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려면 오피스텔을 분양받기 전 해당 단지가 분양보증상품에 가입된 곳인지 확인해야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분양보증을 받은 단지가 전국에 몇 없는 게 문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분양보증상품에 가입한 오피스텔 가구 수는 5034실에 그쳤다. HUG관계자는 “이 분양보증상품이란 것도 2014년에야 만들어진 것”이라며 “분양보증을 받은 오피스텔이 훨씬 안전한 건 맞지만, 현행법상 선택사항이라 건설사에게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부동산VIP컨설팅팀 수석매니저는 “아파트값이 너무 올라 오피스텔을 주거 대체재로 선택하는 국민들이 많아진만큼, 오피스텔 분양자들을 보호해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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