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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못 짓게 막아놓고 공급 늘어난다?…서울시의 이상한 셈법

    입력 : 2020.01.24 05:44

    “서울에는 절대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 서울 집값이 오르는 것은 투기꾼 때문이다.”(정부·서울시)
    “정부가 아파트를 못 짓게 막아 놓고는, 자기들 필요할 때는 통계를 조작해 주택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학계·건설업계)

    서울 집값 상승 원인을 둘러싸고 부동산 업계와 정부 간의 논쟁이 뜨겁다. 누구 말이 맞을까. 서울시는 지난 6일 서울시청에서 ‘주택 공급 전망과 주택시장 진단’과 관련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6년 단위의 주택 공급(입주) 현황을 공개했다. 시는 향후 6년 간 연평균 8만2000가구, 아파트 4만9000가구가 공급될 것이며, 이는 수요에 비해 충분한 양이라고 밝혔다. 주택 공급은 충분한데 일부 투기 세력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는 진단이다.

    적정 주택 공급량은 주택 정책의 핵심이다. 청와대와 국토부, 서울시는 “서울에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전제를 두고 투기 수요 억제를 위해 재건축 인허가를 틀어막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부가 각종 명목을 만들어 집 가진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고, 대출·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는 논리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택시장에서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주택 수요자나 학계나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고, 건설업계도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반대로 서울에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른다고 반박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까?

    서울시 “인허가 고려하면 아파트 연 5만가구 나올 것”
    [땅집고]서울시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힌 지난 10여년 간의 서울 아파트 준공가구 수 및 향후 6년간의 입주 예정가구 수. / 서울시

    서울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5년까지 서울의 아파트 공급 전망치는 연간 평균 4만9000가구로, 지난 6년치 평균(아파트 3만5677만)보다 증가할 전망이다. 아파트 외 주택을 합치면 연간 공급량이 8만 가구 정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를 근거로 “공급부족은 말 그대로 우려일 뿐”이라고 말했다.

    [땅집고]2019년 이후 2년 간 서울 아파트 예상 공급량에 대한 서울시와 민간 부동산업체 부동산114 자료 비교. / 서울시, 부동산114
    하지만 아파트 공급량에서 민간 부동산 정보 업체들의 예상 수치는 서울시 통계와 큰 차이가 있다. 부동산 정보회사 부동산114는 2021년 완공 주택 수를 시가 전망한 예상 가구보다 1만5000가구정도 적은 2만1993가구로 예측했다. 불과 1~2년치 공급량에 대한 통계에서 시와 민간 업체 사이에 예상 가구 수 차이가 1만 가구 이상 벌어진 이유는 주택 수를 계산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땅집고]서울시 아파트 건설 인허가 통계. /서울시

    서울시는 입주자 모집공고와 건축 인허가, 정비사업 단계에 따른 예상 분양 시기를 모두 고려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의 방식대로 통계를 산출하면 입주 물량이 부풀려질 가능성이 크다. 인허가를 받아놓고 실제 분양·입주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정비사업 단지 중에는 분양을 무기한 늦추는 단지들이 많아질 것이 뻔한데 서울시가 이를 알면서도 무시하고 예상 주택 공급 물량을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입주자 모집 공고가 아닌 인허가 물량만으로 입주 물량을 추정한 2022년 이후 수치는 ‘예상치’보다는 ‘희망 수치’에 더 가깝다는 지적이다.

    반면 민간 업체는 오로지 입주자 모집공고를 바탕으로 예정 물량을 추산한다. 이 방식은 입주 가구 수가 부풀려질 우려는 없지만 공고가 나지 않는 30가구 미만의 소규모 단지 등이 누락될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114측은 이에 대해 “모집공고가 나지 않는 30가구 미만의 소규모 단지인 경우 그때그때 추가하지만 그 공급량이 많아봤자 1만 가구를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분양승인·인허가 단지 줄어드는데, 공급은 늘어날 것?

    더욱이 인허가 물량은 지난 2년간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과거 인허가 물량을 근거로 앞으로 공급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서울시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땅집고]서울 연간 아파트 건설 인허가 물량. /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 건축 인허가 물량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의 주택 건축 인허가를 받은 주택 수는 정부 규제가 시작된 2017년 이후부터 급격히 줄었다. 2017년(7만4000여 가구)를 정점으로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3만 가구 수준으로 급속하게 줄고 있는데 서울시는 “연간 5만 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된다”고 예상치를 내놓았다. 서울시가 각종 규제를 적용해 아파트 공급 통로를 차단해 인허가 물량이 줄고 있는데, 아파트 공급 물량을 예상할 때는 늘어나는 것으로 통계를 조작한 셈이다.

    ■ “연 7만~8만 가구면 충분하다는 가정 자체도 잘못됐다”

    ‘적정 공급량’에 대한 인식차도 확연하다. 시는 연간 7만~8만 가구 정도 공급되는 것이 서울의 인구 증감추이와 멸실 가구 수를 고려했을 때 가장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와 국토부 등 정부가 미래 주택 수요를 추정하는 방식은 연령별 주거 소비량이 정해진다고 가정하고, 미래 인구 예측치를 기반으로 장래 필요한 총 주택 면적을 구하는 방식이다. 즉 인구가 감소하면, 필요한 주택 수도 감소한다. 서울시는 이 통계를 기반으로 필요한 주택 수를 계산했다. 작년 6월 내놓은 ‘주거 종합계획’을 살펴보면 그간 서울 인구가 감소한다는 점을 감안해 필요한 주택 수를 예상했다.
    서울시 주거종합계획(2019년 6월)에 제시된 적정가구 수. / 서울시
    하지만 이 같은 서울시의 추론에도 강력한 반론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인구가 줄어든 것은 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서울에 집이 부족해 집값이 오르다보니 싼집을 찾아 경기도로 빠져 나간 것이 절대적인 요인”이라며 “주택이 부족해서 인구가 줄어드는데 인구가 줄어드니 주택이 필요없다는 식으로 황당한 해석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서울의 인구 증감률과 주택 수요를 고려하면 연평균 7만~8만가구가 아닌 12만~13만 가구 정도는 계획해야 주택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서울시가 무작정 ‘공급이 충분하다’고만 주장할 게 아니라 규제에 따라 공급이 축소될 것까지 예상해 장기적인 공급 확대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주택 중에서도 주요 입지, 양질의 새 아파트 공급을 따지면 서울의 공급량은 정부의 전망보다 더욱 부족한 상태”라며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가격이 안정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잘못된 진단으로 공급을 틀어막고 있으니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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