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1.13 05:34
[발품리포트] 지난해 초 6억원(84㎡)이던 전셋값, 1년 새 11.5억원으로
역전세난 우려하던 곳 순식간에 반전…상승세 주변 아파트로까지 번져
전문가 "신축아파트 집주인 세 안 내놔…당분간 전세금 오를 가능성 커"
[땅집고] “전세 보증금이 1년 새 5억이 올라 거의 두 배가 됐어요. 재계약 때까지 이 상태면 이사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5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 만난 30대 학부모 A씨는 최근 급격히 오른 전세금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A씨가 작년 이맘때 이 아파트 단지 84㎡(이하 전용면적) 주택에 전세 6억원에 입주했다. 약 1년이 지난 작년 말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같은 주택의 전세 주택이 11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A씨는 “우리처럼 자녀와 함께 이사온 세입자 학부모들이 대부분 벌써부터 전세금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초 입주한 송파구의 대단지 ‘헬리오시티’는 완공 직전까지만해도 전세금 하락한 대표적인 아파트 단지였다. 한 때 84㎡ 전세금이 5억5000만원까지 떨어지자 헬리오 발(發) 역(逆) 전세난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1년만에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84㎡ 기준으로 최고액인 11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그 외에 이 크기의 주택 전세금은 대부분 10억원이 넘는다. 전세금이 워낙 높게 치솟다 보니 전세계약이 1년이나 남았는데도, 전세 세입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문제는 헬리오시티에서 시작된 전세금 상승세가 이 아파트 뿐 아니라 주변 아파트 단지로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 1년 만에 ‘전세가 폭등’ 진원지로
작년 초 ‘헬리오시티’(전용 84㎡ 기준)의 전세금은 5억5000만~6억5000만원이었다. 헬리오시티는 단지 규모가 총 9510가구로 매머드급이다. 한 지역에서 대규모 입주가 이뤄지다보니 입주하지 않는 집 주인들이 집을 헐값에 전세로 내 놓았고, 이 때문에 전세금이 하락했다. 1만 가구에 달하는 헬리오시티 입주 물량은 강남까지도 여파를 미쳐서 강남3구의 전세금은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특히, 2018년 9월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은 2013년 4월 이후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중반 이후 ‘헬리오시티’의 전세 매물이 대부분 소진되면서 전세금 상승 랠리가 시작됐다. 작년 초 한달 200~300가구에 이르던 전세계약 건수가 지난 여름부터 한 달 평균 20건 안팎으로 줄었다. 11월과 12월에 각각 12건, 6건에 불과했다. 지역 중개업소에선 현재 이 아파트 1만여 가구 중 전세로 나온 매물은 10가구 미만으로 보고 있다. 전세 매물 공급이 줄면서 가격(전세금)이 치솟기 시작했다. 지금은 10억원 이하로는 전셋집을 찾을 수 없다.
전세 공급량이 줄어든 것과 함께 매매 가격이 급등도 전세금 상승세를 이끈 간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부동산은 자신 있다”며 내놓은 공급 축소 정책 덕에 집값이 급등하면서, 전세금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는 지난해 초 매매가격이 14억~15억원 선이었으나 작년 여름부터 급격히 올라 현재는 19억원대에 달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은 59%였다. 헬리오시티는 입주 초기에 물량 공급이 많아 전세가율이 50%도 채 안 됐지만, 매매가가 오르면서 전세금도 서울 평균 전세가율에 맞춰 급등했다.
반면, 1년뒤 통상 2년 짜리 전세 계약이 만료되던 시점에는 전세금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헬리오시티’ 입주자 중에서 전세로 들어온 사람은 30~4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1년 뒤에는 재계약 가구를 포함해 3000가구에 달하는 전세 매물이 다시 한번 일시에 쏟아지면서 전세금이 다시 약세로 돌아갈 것이란 논리다. 가락동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지난해 한창 전세금이 낮을 때 헬리오시티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는 지금처럼 높은 보증금에 재계약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전세 매물이 제법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지 중개업소 대부분은 1년 뒤에는 지금보다 가격이 떨어질 수는 있더라도 84㎡ 기준으로 9억원 이상의 전세금 시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송파구에선 내년에 신규로 입주하는 아파트 물량이 거의 없다. 헬리오시티에서 만나 전세 세입자는 “직장과 아이들 학교 문제가 있어 이사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값이 오른 금액만큼 월세를 주고 반전세로 사는 것을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 동남권에 부는 '전세대란' 공포
‘헬리오시티’발 전세금 상승세는 송파구와 서울 동남권 지역 전반으로도 번지고 있다. 헬리오시티로부터 3km쯤 떨어진 잠실동 ‘엘스’의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달 16일 10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한 달 전에 비해 1억원가량이 올랐다. 잠실 리센츠·파크리오 아파트 상황도 비슷하다. 인근 강동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고덕동 롯데캐슬 베네루체, 고덕 센트럴 아이파크 총 3600가구가 입주를 시작했고 고덕 아르테온 4000여 가구도 2월말 입주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덕동 일대 전세금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고덕동 B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주 1000만~2000만원 정도 값이 뛰고 있다. 몇 달 전만해도 84㎡ 아파트 전세가 4억원대에 거래되다 지금은 6억원 대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정부가 실제 거주를 해야 양도세를 깎아 주는 등의 정책을 내놓아 최근엔 신축 아파트 집 주인들이 세를 내놓지 않고 입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주택자가 줄면서 임대주택 공급량이 줄어 들고 있어 당분간 전세금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