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1.07 05:30
[땅집고] “전세금이 2년 동안 2억원이나 올랐어요. 과천지식정보타운에 청약해 당첨되려고 재작년 과천으로 이사왔는데, 분양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과천시 주민 김모씨)
수도권 역대급 ‘청약 로또 아파트’로 꼽히는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 아파트 분양이 하염없이 늦어지면서 과천 부동산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청약 로또’란 말 그대로 노력하지 않고 운좋게 청약 당첨만 되면 수 억원을 벌 수 있는 걸 말한다.
과천지식정보타운은 서울 강남과 가까운 수도권 공공택지지구다. 앞으로 약 8000가구 규모 주택이 분양될 예정으로 수도권 무주택자들의 관심이 쏠린 곳이다.
문제는 건설사들이 시세보다 수억원 낮은 가격에 분양하라는 정부의 압박에 버티기로 맞서면서 예정된 분양 일정이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첨을 노리고 과천시로 주소를 옮긴 예비 청약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지경이다. 과천시 별양동 M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과천지식정보타운 청약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과천시에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빌라, 단독주택 전세 매물까지 동이 났다”면서 “정작 예정됐던 분양은 계속 미뤄지다보니 주민 불만이 크다”고 했다.
■ 건설사 “손해볼게 뻔한데…분양 못한다”
지난해 11월 말 과천시 분양심의위원회에서 ‘과천 푸르지오 벨라르테(S6블록·504가구)’ 어퍼투 분양가 재심의가 부결됏다. 작년 7월 말에 이어 두 번째다.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과천지식정보타운에 이 단지를 비롯해 총 2000여 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이 분양을 시작하지 못하면 과천지식정보타운 전체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우건설은 분양가를 3.3㎡(1평)당 2600만원으로 제시했지만 과천시 분양가심사위원회는 이보다 약 400만원 낮은 3.3㎡당 2205만원으로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현재 골조를 올린 뒤 분양하는 후(後) 분양 또는 임대 분양 등 다각도로 분양할 방법을 찾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과도한 이익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손실이 너무 뻔하다. 현재 막대한 금융 비용에도 분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천 푸르지오 벨라르테 분양이 지연되면서 대우건설이 공급하는 나머지 아파트 3개 단지는 물론 다른 건설사가 분양을 준비 중인 아파트 1곳과 공공분양(GS건설·금호건설) 1곳도 줄줄이 밀리고 있다. 대우건설은 첫 분양 단지인 S6블록 공사를 시작한지 10개월이 다 돼간다. GS건설 역시 지난해 6월부터 S9블록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과천지식정보타운이 아파트 공사를 완료하고도 상당 기간 입주자를 모집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 과열된 과천 부동산 시장…청약 대기자들은 ‘발동동’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천지식정보타운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일찌감치 과천시로 주소를 옮긴 전세 세입자의 불만이 많다. 과천지식정보타운에 분양하는 주택 중 전용면적 85㎡ 이하는 100% 가점제로 선발한다. 이 중 30%는 과천시에 1년 이상 거주한 세대주만 지원할 수 있어 가점이 높은 무주택 청약 대기자들이 과천시로 이사한 경우가 많다. 과천은 인구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만8000여명 수준으로 서울의 1개 구보다도 적어 아파트 당첨 확률이 높다.
과천의 아파트 당첨 확률이 높다는 소문이 나면서 예비 청약자들이 과천으로 몰려 들었고 전세금도 폭등했다. 최근 정부는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와 택지개발지구의 주택공급 우선 청약 대상자 선정 기준의 거주요건을 1년에서 2년으로 강화하는 법령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과천시 별양동 ‘래미안슈르’ 전용면적 84㎡ 전세금은 작년 10월 8억8000만원(12층)으로 1젼새 1억원이 올랐다. 주변 비슷한 크기 아파트 모두 전세금 시세가 8억~9억원대에 육박한다. 아파트 분양 일정은 기약 없이 늦어지고, 전세금은 치솟으면서 과천의 예비 청약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싸게 공급하라 정부 압박에…건설사, 유상옵션 가격 높여
무조건 싸게 공급하라는 정부 압박에 건설사들이 궁여지책을 찾다보니 유상 옵션 가격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등 공공택지 분양시장 전체적으로 각종 편법도 등장하고 있다. 위례신도시에서 분양한 ‘호반써밋 송파1·2차’도 과천지식정보타운과 마찬가지로 분양가 산정을 두고 지자체와 갈등을 겪다가 지난달 26일 평균 평당 2268만원에 분양을 강행했다. 호반건설은 분양가를 낮게 책정하는 대신 현관부터 거실, 주방, 바닥재, 시스템가구 등에 유상 옵션을 걸었다. 이 옵션 가격을 모두 합치면 6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지난해 4월 계룡건설이 북위례에 분양한 ‘위례리슈빌 퍼스트클래스’ 역시 분양가가 3.3㎡당 2170만원으로 낮았지만, 유상옵션 최대 가격이 7400만원으로 높아 논란이 됐다.
편법적인 유상 옵션 책정은 더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분양가 상한제가 공공택지에만 적용되지만 올 4월 이후 서울 대부분 지역의 민간택지까지 범위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엄격한 대출 규제 때문에 아파트에 청약하려면 적어도 주변 아파트 전세금 정도는 마련할 여력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강제로 분양가를 낮출수록 무주택 서민보다 현금 부자들의 불로소득만 늘려 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