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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상권들 폭망했잖아요? '전리단길'은 다를 겁니다"

    입력 : 2019.11.19 06:14

    [땅집고] “내 가게 하나만 잘 된다고 지역 상권이 활성화되는 법은 없죠. 마을 상인, 건물주, 지방자치단체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전국구 ‘핫 플레이스’(hot place)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상권 열기도 오래 갑니다.”

    [땅집고] 문정호 부산 전포동 카페거리 상인회장. /이지은 기자
    부산의 대표적 공구상가 밀집지였던 부산진구 전포동 일대. 2017년 전후로 이 곳에 낡은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특색있는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전포동은 부산에서 가장 ‘핫’한 상권 자리를 꿰찼다. 일명 ‘전리단길(전포동과 경리단길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부산에 오면 한번쯤 들려볼만한 여행 코스가 됐다.

    [땅집고] 부산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떠오른 부산진구 전리단길. /네이버 지도

    [땅집고] 문정호 상인회장이 2017년 전리단길에 오픈한 카페 '랜드마크9'. /네이버 지도

    문정호(56) 부산 전포동 카페거리 상인회장은 전리단길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로 꼽히는 ‘랜드마크9’ 창업주다. 그는 30여년 동안 외식업계에 종사하면서 ‘신토불이 보쌈’, ‘옹기 김치찜’ 등 개인 브랜드 17개를 런칭한 베테랑이다. 모두 합해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다. 전포동이 본격 주목받기 전부터 서울 성수동 카페거리 못지 않은 매력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2017년 카페 ‘랜드마크9’을 오픈했다. 성수동의 유명 카페인 ‘대림창고’와 꼭 닮아 전리단길에 고객을 불러모으는 거점 역할을 했다.

    문 회장은 상인들 사이에서 ‘전리단길의 해결사’로 통한다. 상인회장으로서 상인과 건물주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왔다. 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부산시청과 부산진구청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문 회장을 만나 전리단길이 전국구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게 된 비결을 알아봤다.

    ―전리단길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땅집고] 문정호 상인회장과 전리단길 상인들은 부산진구청이 전포동 골목을 현대화하자는 제안을 반대했다. /네이버 로드뷰

    “전리단길이 유명세를 탈 기미를 보이던 2017년 부산진구청에 관광위생과가 신설됐다. 당시 관광위생과에서 ‘방문객들이 전포동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골목을 큰 도로로 확장하고, 전선도 지중화하자’고 제안했다. 상인회장으로서 점주들을 대표해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20~30대 젊은층이 일부러 ‘낡은 것’을 보러 전포동까지 찾아 오는데, 이 곳 환경을 현대화하면 동네 특유의 매력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청을 설득한 결과 지금의 전리단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17년까지만 해도 가게가 40곳 정도 있었는데, 현재 300곳 넘게 영업 중이다.”

    ―상인과 건물주가 갈등을 겪는 일은 없나.

    “다른 유명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때문에 폭삭 망하는 것을 보고, 상인과 건물주가 소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리단길 상인들과 1년에 6~7회씩 정기회의를 한 후, 의견을 수렴해 건물주에게 전달하고 있다. 건물주에게 항상 ‘빌딩을 살리는 건 세입자’라고 상기시키는 것도 내 역할이다. 월세 몇 십만원을 더 받기 위해 좋은 매장을 내보내면 결국 건물주에게 손해로 돌아온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건물주 대부분이 동의하고, 협조적이다.

    요즘 상가임대차보호법 때문에 세입자를 한 번 들이면 적어도 5년에서 최대 10년은 내보낼 수 없기 때문에 건물주에게 어떤 세입자를 들여야 건물이 살아날지 컨설팅도 해주면서 상부상조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공공기관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어떤 식으로 협력하고 있나.

    [땅집고] 2019 전포카페거리 축제 포스터. /부산진구청

    “부산시청이나 부산진구청이 전리단길 관련 행사를 기획할 때마다 상인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보통 유명 상권의 경우 상인들이 장사하기 바빠 공공기관에서 지원금을 들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도 귀찮다며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전리단길 상인들은 지자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자체도 전리단길을 확실히 밀어준다. 올해로 ‘전포 카페거리 축제’가 열린지 3년째다. 비슷한 시기 부산진구가 기획했던 행사 중 가장 성공했다. 이달 말에는 부산시가 4억~5억원을 들여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도 열어주기로 했다.

    이익 환원 개념으로 부산진구청 전업주부를 위한 취업교육을 전리단길 카페에서 진행하고 있다. 구청에서 교육대상자를 모집하면, 카페나 빵집에서 업무 노하우를 알려줘 취업·창업을 돕는 식이다.”

    ―골목 상권이 유행이지만 수명이 짧다는 우려도 있다. 생명력 긴 골목상권을 만들려면.

    “골목 상권은 건물주와 세입자가 상생하는 형태를 만들어야 생존할 수 있다. 전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상권으로 꼽혔던 서울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이 침체하게 된 것도 건물주와 세입자가 서로 배려하지 않았던 탓이다. 요즘 같은 불황에는 상권이 한 번 기울면 침체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한번 무너진 상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없는 상권을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세입자나 건물주, 지자체가 끊임없이 상생 모델을 찾아야 상권도 살리고, 상권 수명도 길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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