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1.10 05:03
[땅집고] 서울 강남구에 직장을 둔 20대 A씨는 오피스텔 원룸을 구하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제공하는 실거래가 정보를 살펴보는 중이다.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에서 걸어서4분쯤 걸리는 ‘강남역비엘106’ 28.87㎡(원룸) 전세금은 2억9500만원(3층).
A씨는 보증금이 높아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할 수 있는 다른 지역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영등포구 당산동 4가 지하철 당산역(2·9호선) 10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 정도 거리에 2년 전 준공한 ‘블리스다임빌’ 오피스텔 전세금이 청담동보다 더 높았던 것. 이 오피스텔은 전용 26㎡가 올 8월 2억9000만원(3층)에 전세 계약했다.
입주 연도와 전용면적이 비슷한 강남 역세권 오피스텔이 다른 지역 오피스텔보다 더 저렴한 경우는 의외로 많았다. 역삼동 ‘서희스타힐스’ 29㎡는 2억3000만원, 용산 효창공원역(6호선·경의중앙선) 근처에 2015년 준공한 ‘용산KCC웰츠타워’ 29㎡는 2억4000만원이었다.
집값이 비싸기로 악명 높은(?) 강남은 오피스텔 임대료나 임대보증금 역시 다른 지역보다 높다.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서울 강남3구가 속한 동남권 오피스텔 전세금(전용면적 40㎡ 이하)의 평균 가격은 1억5313만원으로 서울에서 가장 높다. 전세금이 가장 낮은 서남권(9810만원)과 비교하면 1.5배 이상이다. 그러나 최근 새로 들어선 오피스텔이나 역세권 등 입지 좋은 곳을 중심으로 강남 오피스텔 임대료를 뛰어넘는 비(非) 강남 오피스텔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 비 강남 신축·역세권 오피스텔, 강남보다 비싸
강남권과 비 강남권 오피스텔의 임대료(보증금) 역전 현상은 요즘들어 두드러진다.
‘청담 푸르지오시티(2014년 입주)’ 29㎡는 작년만 해도 3억3000만원(6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하지만 올해 2억원대로 가격이 꺾였다. 역삼역 앞에 있는 ‘역삼 푸르지오시티(2016년 입주)’ 23㎡ 전세금은 입주 때 2억3000만원(12층)이었는데 현재 2억2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청담 푸르지오시티’와 같은 시기 입주한 용산역 앞 ‘용산 푸르지오써밋(2017년 입주)’ 29㎡ 전세금은 입주 당시 2억3000만원(35층)이었지만 올 7월에 3억5000만원(37층)에 거래돼 2년 만에 1억2000만원 상승했다.
주목할 점은 입주 5년 이내 신축 단지에서 이같은 강남과 비강남 전세금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올 2월 영등포구 여의도동 ‘신한 여의도 드림리버 오피스텔(2019년 준공)’ 29㎡는 전세금이 3억원으로 서초구 신축 역세권 오피스텔인 ‘서초어반하이(2018년 준공)’ 29㎡ 전세금 3억원과 맞먹는다. 하지만 2003년 입주한 ‘여의도 금호리첸시아’ 31㎡ 전세금은 크기가 더 큰데도 1억9000만원(3월, 2층)에 머물렀다.
당산동3가 영등포구청역 부근에 올 7월 입주한 ‘당산디벨리움’ 26㎡ 전세금은 2억5000만원(5층)이었다. 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 근처 ‘현대썬앤빌강남’의 같은 크기 전세금인 2억4000만원(3월, 5층)보다 1000만원 비싸다. 하지만 ‘당산디벨리움’ 가까이에 2010년 입주한 ‘진성오피스텔’ 29㎡는 1억8000만원으로 면적은 더 넓어도 7000만원쯤 저렴했다.
■ “오피스텔은 학군 영향 적고, 공급량도 넘치는 탓”
오피스텔 임대료는 통상 직장인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강남권에 직장이 몰려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직장인이 많아 오피스텔 평균 임대료도 비싼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역세권 신축 단지에서는 강남과 비 강남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오피스텔의 특수성 탓이다. 여경희 부동산114 연구원은 “아파트와 달리 오피스텔은 내부 상태가 우수하고, 주변 교통망과 인프라만 좋으면 학군이나 동네 분위기 같은 지역 요인이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강남과 비 강남이 시세가 비슷하게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망 확충으로 강남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에 공급이 늘어난 것도 강남권 오피스텔 가격이 주춤한 원인으로 꼽힌다. 강남 인근 출퇴근이 가능한 경기 하남 미사지구, 성남 판교신도시 등지에 신축 오피스텔이 1만실 이상 들어섰다. 2017년부터 약 2년 간 성남시에만 5540가구, 하남시에는 1만2029가구 오피스텔이 입주했다.
강남역 인근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직장인 전월세 수요가 꾸준하긴한데 최근 강남에서 약간 떨어져 있고 교통은 좋은 ‘비 강남 역세권’ 지역에 신축 오피스텔이 많이 들어서면서 오피스텔을 사겠다는 문의 자체가 끊겼고, 임대 수요도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오피스텔 투자 시장에서도 강남보다 비 강남 역세권 오피스텔을 먼저 찾는 상황이다.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용부동산센터장은 “강남이든, 비강남이든 오피스텔 수요층은 주로 1~2인 가구로, 소득이 일정한 수준에 그쳐 월세나 보증금이 상승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큰 아파트와 달리 오피스텔 시장에서는 단순히 ‘강남’이라는 지역에만 고집해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