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0.28 06:37
지하철 2·6호선이 교차하는 합정역. 8번 출구 방면으로 걸어나오자 통로 좌우와 천정에 책장이 붙어있는 ‘북 터널(Book Tunnel)’이 나타났다. 평일 점심 시간, 북 터널 사이로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갔다. 이 통로를 지나면 전철역과 연결된 상가 ‘딜라이트 스퀘어’가 나온다. 누구나 이 북 터널을 지나다보면 대형 서점이 나올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딜라이트 스퀘어 지하1층 2200㎡(약 670평) 공간에는 교보문고가 자리잡고 있다.
서점의 어른 키를 훌쩍 넘은 책장 사이에는 기다란 독서대가 있고, 이곳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서점보다 더 붐비는 곳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와 펜시 전문점 등 라이프 스타일 가게였다. 이곳 학용품점에서 필기구를 구매한 대학생 이모(23) 씨는 “책을 살 때도 있지만 아기자기한 볼펜이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어 학교 강의가 끝나면 종종 이곳에 들른다”고 했다.
서점의 어른 키를 훌쩍 넘은 책장 사이에는 기다란 독서대가 있고, 이곳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서점보다 더 붐비는 곳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카페와 펜시 전문점 등 라이프 스타일 가게였다. 이곳 학용품점에서 필기구를 구매한 대학생 이모(23) 씨는 “책을 살 때도 있지만 아기자기한 볼펜이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어 학교 강의가 끝나면 종종 이곳에 들른다”고 했다.
딜라이트 스퀘어는 2015년 10월 입주한 이후 2년 가까이 상가 대부분이 텅 비어있었고 미분양 상가도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 서점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딜라이트 스퀘어 분양사업부 관계자는 “2017년 4월 교보문고가 입주한 이후로 입점 업체가 빠르게 늘면서 현재는 분양이 100% 완료됐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동영상에 밀려 위기에 몰렸던 대형 서점이 상업용 건물 시장의 주인공으로 되살아 나고 있다. 대형 서점이 들어간 곳은 사람이 몰리면서 주변 상권까지 살아나게 하는 효과가 나타나면서 상권의 ‘키 테넌트(Key tenant , 고객을 끌어들이며 건물의 가치와 임대 수익을 올리는 핵심 임차인)’로 떠오른 것이다.
■ 책으로 인테리어한 상가, 공실률 낮추고 유동인구 끌어모으는 키 테넌트로 떠올라
최근까지 상권의 키 테넌트는 ‘전국구’ 맛집, 멀티플렉스 영화관, 대형마트를 꼽을 수 있었다. 맛집 골목의 근린상가를 운영하는 건물주들은 “실력있는 맛집 점주 하나만 들여도 온 동네 상권이 살아난다”고 말할 정도였다. 또 상가 분양을 할 때는 CGV와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나 이마트, 롯데마트 등을 먼저 입점시켜 놓고 소규모 임차인을 찾는 것이 정석이었다.
최근에는 키테넌트의 자리에 교보와 영풍 등 대형서점이 이름을 올렸다. 대형서점 역시 맛집이나 영화관처럼 다양한 유동인구를 빨아들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주 서점에 간다는 것 자체가 책을 자주 읽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종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면서, 상권의 유동인구를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이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서점은 면적 2800㎡(850평)에 약 7만권의 책을 쌓아 두었다. 이곳의 책장은 거대한 인테리어 소품이다. 서점이 들어선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은 별마당 도서관이 개관한 이후 약 1년이 지났을 시점 약 7~10%였던 공실이 거의 없다. 코엑스몰을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는 2017년 5월 별마당 도서관 개관 이후 1년 간 2100만명, 이듬해에는 2400만명이 스타필드 코엑스몰을 찾았다고 밝혔다.
대형 몰이나 상가에서 서점의 위치도 핵심으로 옮겨왔다. 서울 반포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4층에는 루이비통·구찌 같은 명품 여성 신발·의류 매장들 사이에 서점 ‘반디앤루니스’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 4층 약 1700㎡(약 500평) 크기 공간에도 이 서점이 있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엔 약 1000㎡(약 320평)의 ‘교보문고’가 들어와 있다. 지하 2층 주차장과 바로 연결돼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서점에 온 것 만으로도 ‘독서를 했다’는 만족감 줄 수 있어”
서점이 상업 시설의 핵심부를 파고 드는 이유는 확실한 모객 효과도 크고, 부수적인 매출 증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신지혜 STS개발 상무는 “최근 부각된 서점들은 도서만 판매하는 매장은 거의 없고 음반·문구류의 비중이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며 “최근 새로 생긴 서점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카페나 음식점까지 함께 입점해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행하고 있는 서점 열풍은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상가전문 플랫폼 ‘상가의 신’ 권강수 대표는 “소비자들은 쇼핑 센터에 있는 서점에 올 때 책을 사거나 읽지 않아도 ‘품위 있게 독서를 했다’는 느낌을 갖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점에서 서점은 지적 허영심을 확실하게 채워주는 고품격 임차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