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9.15 09:40
이번 정부가 시작된 이후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규제가 수시로 쏟아지고 있다. 그 중 지난해 발표한 9·13 대책은 사상 역대 규제 정책 중 가장 강력한 규제 대책이라고 평가받는다. 9·13대책은 대출 강화·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중과·청약 제도 개편 등 굵직한 규제책들을 담고 있다.
9·13 대책이 나온지 1년이 지났다. 대책이 나온 직후 제법 효과가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서울 집값이 지난해 11월부터 32주 연속 하락하고 거래가 줄었다. 하락폭 자체가 크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의도대로 부동산 시장 열기도 한풀 꺾이는 듯 했다. 하지만 ‘약발’도 잠시, 서울 집값은 지난 6월 이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 단지 중에는 전고점을 넘어서는 단지들까지 생기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시장을 왜곡시켜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9·13대책은 주택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해야 할까. 땅집고가 9·13 대책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 3가지를 꼽았다.
1. 전체 거래량은 줄었지만…고가 아파트 가격 더 오르고, 거래량 비중 늘어
9·13 대책에 포함된 각종 규제로 주택 거래가 감소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대책 이전 1년 동안 9만7415건이었는데, 대책이 나온 후 1년 동안은 4만2564건으로 56.3%나 줄었다.
그런데 전체 거래량 중 9억원을 초과하는 고가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책 전보다 늘었다. 대책 이전 1년(2017년 9월~2018년 9월) 동안 이뤄진 거래 중 9억원 초과 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17.3%(1만6847건)였다. 그런데 대책 후 1년(2018년 9월~2019년 9월) 동안에는 이 비율이 24.7%(1만511건)로 늘었다.
전반적으로 거래량이 줄기는 했지만, 서울의 중고가 아파트는 여전히 제법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3구와 광진구 등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지역에선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덜 줄어 들었다. 정부가 9·13대책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비싼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내 놓은 것인데, 강남권은 거래량도 크게 줄지 않고 가격도 최근 들어 다시 치솟고 있다.
2. 청약경쟁률 양극화…비인기 지역은 더 떨어지고, 인기 지역은 더 올라
정부는 서울 및 주요 대도시 청약 시장에서 새 아파트를 아무나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다주택자는 ‘투기꾼’으로 규정하고 청약 1순위 조건을 강화하고,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중도금 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의 규제를 내놨다. 청약 경쟁이 과도하다고 보고, 집을 사지 못하도록 규제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이 집중됐던 지역들에서 청약 경쟁률이 되려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9.13대 대책 이전 1년 동안은 18.3대 1이었는데, 대책 이후 1년 동안은 24.0대 1로 올랐다. 같은 기간 광주 역시 18.1대 1에서 37.4대 1로, 세종도 41.9대 1에서 48.0대 1로 크게 상승했다.
청약 인기 지역에서 발생한 미계약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이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정부가 만든 무순위 청약 제도 때문이다. 아파트 미계약분에 대해 청약 통장이나 주택 여부와 상관 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를 빗대 ‘줍줍(게임에서 아이템을 운 좋게 취득하는 것)’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3. 규제 계속하는데, 아파트 분양가도 계속 올라
서울 및 대도시에 분양하는 단지에 수요가 몰리자 분양가도 올랐다. 분양가 상승세가 전국구로 이어지면서, 서민들이 내집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은 더 증가했다.
9·13 대책에는 명확하게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 대책을 기점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선분양 시스템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에선 새 아파트는 분양 보증을 받아야 청약을 받을 수 있는데, 분양 보증을 독점하는 허그를 통해 가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발표 이후 1년간 전국 평균 분양가는 3.3㎡(1평)당 1396만원이었다. 대책 이전 1년 동안 분양한 아파트 평균 분양가(1216만원)에 비하면 14.8% 상승한 수치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광역시의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34.1%로 가장 높았다. 이어 울산(29%), 대구(28.9%), 서울(13.8%), 부산(11.8%) 순으로 상승폭이 컸다.
정부의 대책이 분양 가격을 잡지 못하자, 지난 6월 민간택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하겠다는 또다른 규제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직접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새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최근 청약 경쟁률이 더 폭발하고 있다.
지난 4일 포스코건설이 인천 송도 국제신도시에 분양한 아파트 3곳(총 789가구)을 분양하는 데 1순위 청약에만 11만2990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이 143대 1에 달한다. 서울에선 거여마천뉴타운 2-1구역을 재개발하는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이 1순위 당해지역 청약에서 429가구를 모집하는 데 2만3565명이 청약해 경쟁률이 54.9대 1이었다. 동작구 사당3구역을 재건축하는 ‘이수 푸르지오 더프레티움’도 평균 경쟁률 203.7대 1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9·13대책은 실패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주택 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정부 뜻대로 시장이 움직여주지 않았던 데다가 주요 지역 집값 상승만 불러 왔다는 것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대책 이후 계속 거래량이 부진한데도 집값이 오르는 것은 매물 잠김 현상 때문”이라며 “다주택자들에게도 매도할 길을 만들어줘야 매물이 늘고 가격도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 이후 일부 긍정적인 면도 있기는 하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문제였던 갭투자자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많이 사라졌다는 것은 정부 대책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