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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있는 날에도 텅텅…상인도 야구팬도 버린 고척돔

    입력 : 2019.09.08 04:44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작년 말 전국의 상가 공실률이 역대 최고(중·대형 기준 10.8%)로 치솟았다. 곳곳에서 문 닫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땅집고는 ‘벼랑 끝 상권’ 시리즈를 통해 몰락하는 내수 경기의 현실과 자영업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전한다. 여섯 번째 현장으로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

    [벼랑 끝 상권] ‘야구팬 성지’인 고척돔, 지하 상가 텅텅 비어버린 이유는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야구경기장 '고척스카이돔'. /최준석 인턴기자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인데도 고척돔 지하 1층 상가인 '고척스카이몰'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최준석 인턴기자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고척스카이돔’ 지하 1층 상가 ‘고척스카이몰’. 이날은 고척스카이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프로야구단 ‘키움 히어로즈’와 상대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보통 경기 당일이라면 경기장 안에 있는 상가들이 치킨과 맥주를 비롯한 간식을 구매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척스카이몰은 오가는 사람이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이 곳에서 장사하던 점포 31곳 중 25곳이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한 것.

    고척스카이몰 내 빈 점포마다 '리모델링 대상구역', '철거 예정'이라는 전단이 붙어있다. /최준석 인턴기자

    ‘허갈닭강정’, ‘조샌드위치’, ‘할리스카페’를 비롯해 아직 남아있는 매장이 6군데 있다. 하지만 문을 닫아 불꺼진 점포가 대부분인 탓에 상가는 빈 건물처럼 보였다. 매장 곳곳에는 ‘리모델링 대상구역’, ‘철거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고척스카이돔은 서울시가 3000억원을 들여 지은 국내 최초의 돔구장이다. 천장이 뻥 뚫린 기존 경기장과 달리 비가 와도 경기가 가능해 2016년 개장할 때부터 야구팬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현재 고척돔 지하 상가 공실률은 80%가 넘는다. 고척돔 상가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뭘까. 땅집고가 현장을 취재했다.

    ■ “쇼핑하기 너무 불편해” 기묘한 동선

    경기장 관중석 중 1% 정도를 차지하는 '스카이박스' VIP석만 지하 1층 상가와 바로 연결된다. /고척스카이돔

    고척돔 상가 영업이 부진한 이유로 상인들은 “상가 구조 자체가 장사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선 관중석과 지하 1층 상가가 단절돼 있다. 경기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관중석(1만6568석)에서 상가로 곧바로 갈 수 있는 문이 없다. 관람객들이 경기를 보다가 지하 상가에서 간식이나 음료를 사려면 일단 경기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후 대로변에 있는 출입문으로 들어가 다시 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야말로 비효율적인 동선이다. 고척스카이돔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상가에 바로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VIP석인 스카이박스(216석)를 구입한 관람객만 이용할 수 있다.

    ■ 월세 인상에 상인들 부담 증가…관리비도 비싸

    지하상가에 입점한 매장들을 알리는 간판. 공실이 많은 탓에 간판이 썰렁하게 비어있다. /최준석 인턴기자

    서울시의 임대료 부과 시스템 변경도 문제다. 2016년 민간 업체가 고척스카이몰을 위탁 운영했을 당시에는 임대료를 월세로 받았다. 비수기에는 월세를 일부 깎아주는 등 임대료 시스템이 탄력적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2017년 운영 주체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으로 넘어간 뒤에는 임대료 시스템이 연간 정액제로 변했다. 상가 위치에 따라 수 천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1년에 1~4 회 선납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장사도 안되는 가운데 월세부터 내라는데 대해 상인들 불만이 컸다.

    고척돔 방문객 수도 줄고 있다. 2017년 70만명에 육박했던 관람객은 지난해 45만4754명으로 35% 가까이 줄었다. 홈구단인 키움 히어로즈의 관중 수가 전체 10개 구단 중 9위를 기록하는 등 모객 성적이 부진한데다가 소속 선수의 성폭행 루머, 대표의 횡령 이슈까지 터지면서 원정 관람객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올 시즌 관중수 또한 지난 8월 7일까지 33만 7897명으로 10구단 최하위다. 홈 16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경기당 평균 관중은 6016명으로 지난해 보다 300명 가량 줄었다. 관람객 수가 줄면서 지하 1층에서 장사하던 상가들까지 타격을 받았다.

    고척스카이돔 지하 1층 상가 현황. 놀부부대찌개(초록색 표시)는 지난달 폐업했다./조선DB

    이런 상황에서 임대료도 올랐다. 고척스카이몰에 있는 52평 매장에서 부대찌개 식당을 운영하던 이모(35)씨는 올해 임대료로 2930만원(관리비 별도)을 냈다. 지난해 2700만원을 내던 것보다 약 5.7% 오른 금액이다. 손님은 줄었는데 임대료는 되레 올라 장사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모씨는 지난달 18일 가게 문을 닫았다.

    ‘관리비 폭탄’ 역시 점주들이 떠난 요인이다. 현재 이 곳에서 10평 남짓한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여름에는 한 달 관리비만 60만원이 나온다”며 “이 곳에 입점하기 전 운영했던 20평짜리 매장과 관리비가 똑같이 나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서울시 상가 운영 전문성도 부족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의 상가 운영 전문성이 부족해 고척스카이돔 상권 침체가 가속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인 A씨는 “공실이 많아 상가 전체가 흉물스러운 분위기가 나는데, 시설관리공단은 빈 점포를 시각적으로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라며 “심지어 천장에서 물이 새서 CCTV가 고장났다고 지난해 12월 얘기했는데, 거의 1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수리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고척스카이몰의 빈 점포를 어떻게 사용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대기실, 버스킹 공간, 팬미팅과 팬사인회장, 키즈존 등 시민 편의시설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척스카이몰 상인들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의 운영 전문성 부족을 문제로 꼽는다. /최준석 인턴기자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으로 고척돔 상가를 살릴 수 없다고 본다. 지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접근성과 가시성이 부족한 지하 상가일수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침침한 분위기로 유명했던 지하철 7·9호선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는 2012년 ‘고투몰’로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후 유동인구가 배 이상 늘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는 고객 불편을 수렴해 냉난방 시설을 개선하고, 고투몰 양쪽 끝에 푸드코트를 조성해 소비자 편의를 높인 덕분이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고척스카이몰처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상가의 경우 담당자가 바뀌면 그만이어서 시설·운영 미비에 대한 책임 전가가 흔하게 일어나는 편”이라며 “차라리 민간업체에게 위탁하는 것이 상인들과 상가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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