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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깡그리 무시하고 밀어붙이더니…" 역풍 맞은 김현미

입력 : 2019.09.04 05:52

분양가상한제 시행 시기를 두고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의견이 갈렸다. /연합뉴스

“분양가상한제, 예정대로 올해 10월 시행한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10월에 바로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가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겠다며 고강도 대책으로 내놓은 ‘민간 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도 되기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이번 대책을 주도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오는 10월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내 다른 경제부처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주택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장관이 분양가 상한제를 무리하게 밀어 붙여 정책 발표는 했지만, 시행 시기가 다가오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대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이 시행 직전에 오락가락하면서 주택업계에선 “국토부가 시장 상황을 무시하고 반 시장적인 정책을 추진하다가 역풍(逆風)을 맞은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풍 맞는 김현미 장관…시행 직전 부처 의견 갈려

민간 택지 분양가상한제 지역 지정 정량요건. /국토교통부

국토부는 지난 7월 12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본격 적용하기 위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상한제 지정 요건을 기존 ‘직전 3개월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지역’에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확대 변경하는 것이 골자다. 당시 국토부는 개정안을 올해 10월 초 공포·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 서울 아파트 값이 안정되고, 무주택자들의 내집 마련 기회가 더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장관의 바람과는 달리 아파트 값은 계속 오르고,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재건축 조합들만 혼란에 빠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정부 내에서 국토부의 분양가 상한제 시행과 관련해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이 주목된다. 그는 지난 1일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10월 초 (분양가상한제 관련) 시행령이 발표된다고 해서 바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동 시기는 국토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제가 주재하는 관계 장관회의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기재부는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돼 과도하게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될 경우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김현미 장관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 아니다. 이 총리는 지난달 2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분양가상한제는 시장 움직임을 봐가면서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겠다. 시기도, 대상 지역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에선 이 발언을 분양가 상한제를 당장 시행할 계획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락가락 정책 시행에 공급자·수요자만 혼란

3기 신도시 철회와 김현미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수도권 1,2기 신도시 주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운정신도시연합회

김현미 장관의 임기 종료가 다가오는 것도 상한제 시행에 변수로 꼽힌다. 김 장관은 내년 4월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이다. 선거법상 총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까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김 장관 임기는 길어야 내년 1월까지이며, 올 11월 개각 때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김 장관이 물러나면 분양가 상한제 자체가 동력을 잃고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김 장관이 여론이 악화된 자신의 지역구(경기 고양 정) 출마를 포기하고 장관직을 계속 수행하거나, 정부 내 다른 요직으로 옮기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엘루체컨벤션에서 열린 '분양가 상한제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을 주제로 열린 정책 토론회. /연합뉴스

문제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달에 상한제가 시행될 것으로 보고 분양 시기를 조절한 수도권 정비사업장들은 또 다시 정부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단 법안은 통과시킨 뒤 총선 직전에 시행해 무주택자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10월 시행은 어려워진 것이 확실하다”며 “정부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불완전한 상태로 두고 수요자와 공급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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