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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세우고, 비상계단 막고…임대주택 차별 기막힙니다"

    입력 : 2019.08.26 05:20



    서울 마포구 서교통의 랜드마크 주상복합으로 꼽히는 '메세나폴리스'. 전체 가구 중 12% 정도가 임대아파트다. /네이버 로드뷰

    “임대주택 주민들은 집에 불이 나도 도망 가야 할 비상구가 막혀 있어요. 이건 좀 심하지 않나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랜드마크 주상복합으로 꼽히는 ‘메세나폴리스’. 최고 39층인 이 아파트의 비상계단을 올라가다보면 10층에서 11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있다.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민들이 비상계산을 이용해 위층으로 대피하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비상 계단이 막혀 버린 이유는 이 아파트의 설계 때부터 임대주택과 일단주택의 동선(動線)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이 아파트의 4~10층 사이 저층부에는 임대주택이 자리잡고 있고, 11층부터 일반 주택이 배치돼 있다. 설계 때 두 그룹간의 동선을 분리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메세나폴리는 2012년 6월 입주한 단지로, 총 617가구 중 12% 정도인 77가구를 임대아파트로 구성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임대가구 의무비율을 10~15%로 정하고 있는 서울시의 ‘소셜 믹스(Social Mix)’ 정책에 따른 것이다. 한 단지에 일반주택과 임대주택이 섞여 있으면 사회 계층 간 공존하는 시스템이 생겨난다는 주장에 따라 생겨난 정책이 바로 소셜 믹스다.

    ■임대주택과 일반주택 출입문·엘리베이터도 따로

    최근 소셜 믹스 정책 적용을 받는 아파트 단지가 점점 늘어나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규정에 따라 서울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임대 가구가 입주는 하고 있지만, 임대 가구 입주민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가구를 7층짜리 저층 건물에 몰아두고, 외관을 어두운 색 자재로 마감해 차별 논란을 빚은 '디에이치아너힐즈'. /땅집고

    최근 입주가 시작된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해 지난 8월 입주한 ‘디에이치아너힐즈’에선 아파트 외관 디자인 차별이 논란이 됐다. 이 아파트 단지는 총 23개동 중 2개동(301, 323동)에만 임대가구를 배치했는데, 임대 주택이 들어간 동만 유독 외관을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로 마감했다. 흰색·연회색 등 밝은 색을 주로 쓴 일반가구와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자녀가 차별당할까봐 디에이치아너힐즈 임대주택 입주를 고민하고 있는 한 당첨자.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이 아파트 임대주택에 당첨됐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는 “임대동은 7층짜리 저층 건물로 분리되어 있어 아파트가 아니라 상가같기도 하다”라며 “아직 3살인 자녀가 차별대우 받을 까봐 마음에 걸린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반동과 임대동 사이에 높은 벽을 쌓아 물리적인 교류를 단절시킨 '보문파크뷰자이'. /네이버 로드뷰

    일반동과 임대동 사이에 장벽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다. 일반동인 115동과 임대동인 116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해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다른 동으로 아예 건너갈 수 없게 만들었다.

    메세나폴리스처럼 일반가구와 임대가구가 같은 동을 쓰는 경우, 설계를 통해 입구, 엘리베이터, 비상계단를 분리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7월 분양한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최고 32층, 총 1140가구)’도 임대가구 194가구를 5~18층에만 넣은 후 출입구·엘리베이터 분리했다. 정부의 규제 중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에 임대주택 전체 가구 수의 일정 비율까지는 넣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설계와 운영에 대한 세부 지침이 없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 “차별 없는 단지에 인센티브 주는 방식 검토해 봐야”

    임대 아파트 가구 거주민에 대해 커뮤니티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동작구 본동 ‘래미안트윈파크’, 흑석동 ‘동부센트레빌’의 경우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의의 허락을 따로 맡았을 경우에만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일반분양한 주택은 주택법, 임대주택은 임대주택법을 각각 적용받는데, 이에 따라 일반가구와 임대가구가 내는 관리비나 시설 유지보수비 등에 차이가 있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은 단지 내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입주민 회의에도 참석하기 쉽지 않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가 수도권 임대주택 의무 비율을 지자체 재량에 따라 최고 30%까지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을 개정, 발표했다. /국토교통부

    더구나 임대주택 의무 비율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임대주택 의무 비율을 최고 30%까지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소셜 믹스 아파트 단지에서 ‘계층간 갈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가 임대 아파트 의무 입주 비율 규제를 적용하는 것에 더 나아가 아파트 단지 설계와 동선, 커뮤니티 시설 이용방식까지 규제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임대주택으로 이미 손실을 감수한 조합원과 일반 주민에게 정부가 일방적으로 설계와 동선까지 정해 규제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한 면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임대주택을 차별하지 단지에 대해 정부가 용적률이나 층고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차별 제거를 유도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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