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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상한제가 집값 잡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입력 : 2019.07.15 05:45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민간 택지(宅地)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택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서울 주택 시장이 지난 6월 이후 다시 상승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두고 “서울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집값 안정 효과도 제한적일 뿐더러 장기적으로는 공급 축소로 인한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분양가 상한제는 과거 정부 시절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꿔가며 도입된 바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때로는 효과를 내기도 했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가 분양가 규제로 주택 시장 시장 가격을 잡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는 시장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좇은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 1977년 첫 도입, 공급 축소 등 부작용에 폐지

    우리나라의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첫 도입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었던 1977년이다. 당시는 중동 건설 시장에서 벌어들인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면서 아파트값 급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박정희 정부는 ‘행정지도’를 통해 ‘정부 고시 분양가’ 제도를 도입했다. 첫 해에는 모든 아파트의 분양 가격을 3.3㎡(1 평)당 55만원으로 정했다.

    당시에는 한 해에 전국적으로 아파트를 수십만 가구를 짓던 시절이 아니라, 서울에만 아파트를 수백~수천가구 규모로 짓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즉 아파트가 주력 주택이 아니라 예외적인 주택 형태였고,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 규제 정책이 주택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파트 공급량이 늘고,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이 제도의 부작용이 커졌다.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 당첨자에게 막대한 시세 차익을 안겼지만, 건설사의 주택 공급을 위축했다. 이미 이때부터 ‘로또 아파트’를 양산했던 셈이다. 결국 주택 공급 부족으로 1980년대 말 전세금 폭등 등 ‘부동산 대란’이 일어났다. 분양 가격 통제가 시장 왜곡과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는 것은 이때 이미 입증됐다. 결국 아파트 분양 가격을 일괄 통제하는 분양가 상한제는 1989년 폐지됐다

    ■ 분양원가 연동제+대거 공급…가격 안정에 기여

    연도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국토교통부

    1990년대 초 당시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걸며 단기간에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분양원가 연동제’를 도입했다. 이는 분양가를 택지비와 건축비에 연동하는 제도로 현재의 분양가 상한제에서 분양가 상한을 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특이한 것은 이때의 ‘분양원가 연동제’는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일괄적인 가격 상한을 풀어 건설사가 일정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완화’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1991년 9월 경기 성남 분당신도시 건설현장의 항공 사진./조선DB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가 공급되면서 서울 아파트값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안정을 찾았다. 분양원가 연동제 덕분에 민간 건설사가 빠른 시간에 대규모 공급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고, 동시에 급격한 개발 이익에 따른 집값 급등도 방지할 수 있었다. 이 때 효과가 어느 정도 검증된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는 현재도 이미 적용되고 있다.

    ■ 판교 등 2기 신도시 때 부활…‘투기 열풍’만 부추겨

    1990년대 초 주택의 충분한 공급으로 1995년까지 집값이 내려가고, ‘탈규제’ ‘글로벌스탠더드’를 내건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양가는 점차 자율화됐다. 김영삼 정부 말기(1997년)에는 IMF 경제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분양가 규제가 유명무실 해지기도 했다. 결국 1999년 분양가는 완전 자율화됐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들어 IMF경제 위기의 여파가 사라지면서, 경기 침체기에 이어졌던 공급 부족, 기존 주택 가격의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까지 겹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부동산과 전쟁’을 외치던 노무현 정부는 2005년 2월, 2기 신도시 공급과 함께 현재의 제도와 동일한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다. 먼저 공공택지에 대해 적용해 그해 6월 분양한 경기도 성남 판교신도시가 첫 실험장이었다.

    판교신도시 분양 첫날인 2006년 3월 29일 경기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청약 접수자들이 아파트 분양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조선DB

    하지만 공공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도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첨만 되면 수억원씩 이익이 남는 아파트 분양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전국이 아파트 투기장으로 변질했다. 정부가 규제하는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다는 점은 오히려 투기 심리를 부추겼다. 분양권에 대한 불법 전매가 들끓었고, 전매 기한이 끝나면 어느새 분양가보다 수억원 높은 가격에 시세가 형성됐다. 특히 판교는 공공택지이면서 강남급 입지를 갖추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판교 신도시 전체가 투기판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 정부가 추진하는 ‘민간 택지까지 포함하는 분양가 상한제’와 동일한 방식은 2007~2015년 사이에 시행됐다. 재건축 아파트에까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자 2006년까지 밀어내기 공급이 이뤄진 이후 이듬해부터 아파트 공급이 급감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사업승인 사업장은 2006년 14곳에서 2007년 2곳, 2008년 한 곳으로 줄었다.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아파트는 2013년 10월 3.3㎡당 3200만원에 분양됐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당시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15% 정도 낮았다. 현재 이 아파트 가격은 3.3㎡당 7500만원 정도로 약 2.5배 뛰었다. 서초구 서초동 ‘서초푸르지오써밋’과 ‘서초교대e편한세상’ 역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주변보다 20% 정도 낮은 가격에 분양됐지만, 현재 시세는 분양가 대비 2.5배 정도 높다.

    결국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일부 당첨자들에게만 로또 수준의 이익을 안겨줬을 뿐, 가격 안정 효과도 없고 오히려 공급을 줄이는 부작용만 있었던 셈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은 분양가 상한제의 이 같은 부작용을 지적하며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분양가 급등 우려가 있는 지역에 한해 적용)하는 개정안을 2009년부터 추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2014년 말에야 법이 통과됐다.

    결국 2015년 4월부터 민간 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는 사실상 폐지됐다. 현재 민간 택지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려면 최근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 최근 1년간 해당 지역의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곳에 대해 적용하는데, 아직 적용된 사례가 없다.

    ■ “재건축 타깃 상한제, 과거보다 부작용 크다” 비판

    문재인 정부가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경우, 2015년 이후 4년여 만에 부활하는 셈이다. 과거 여러 차례 집값 안정 효과보다는 부작용만 확인됐던 제도를 서울 강남 등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무리해서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됐던 동안 강남 등 선호 주거지역에서 재건축 추진이 활발했는데, 이 제도가 부활하면 사업성이 악화해 재건축 추진이 뚝 끊길 우려가 있다”며 “강남 재건축뿐 아니라 강북의 재개발 아파트들도 영향을 받아 기존 고가 주택들의 희소성을 더 높이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현재 아파트 시장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서 나온 잘못된 처방”이라며 “강남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서라면 재건축 공급을 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를 풀어 공급 부족 지역에 양질의 아파트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 한번 올리고나면 10년은 늙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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