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7.10 05:39
아파트 분양 보증이 본래 업무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최근 ‘보증서 발급’을 무기로 사실상 민간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통제를 강화하면서 갈등과 잡음이 속출하고 있다. 더욱이 분양가 심사 기준이 자의적인데다 그나마 심사 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아 ‘공기업 갑질’이 도(道)를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HUG가 시세 대비 과도하게 낮은 분양가를 요구하는 바람에 상당수 단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분양을 미루거나 아예 후분양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시장 왜곡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 “10년전 지은 아파트 시세에 맞추라니…”
HUG로부터 분양 보증을 받지 못하면 아파트 분양이 불가능하다. HUG는 분양 보증 독점을 무기로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광명 등에서 분양보증서 발급에 앞서 분양가 심사를 진행한다. 분양가 심사의 명분은 이른바 ‘고분양가 지역의 보증 리스크 관리’이지만 HUG는 사실상 분양가 결정 권한을 갖는 허가권자처럼 군림하고 있다.
문제는 HUG의 분양가 통제에 합리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1년 내 분양했던 단지의 유무, 비교 대상 단지의 위치에 따라 사실상 ‘복불복’으로 분양가를 결정한다.
서울 중구 입정동의 재개발 단지인 ‘힐스테이트 세운’. 서울 도심의 마지막 알짜로 꼽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지구 지정 13년 만에 들어서는 아파트다. 당초 올 6월 말 일반 분양을 계획했다가 최근 무기한 연기했다. HUG가 “분양가가 너무 비싸다”면서 보증서 발급을 거부한 탓이다.
HUG가 시세 대비 과도하게 낮은 분양가를 요구하는 바람에 상당수 단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분양을 미루거나 아예 후분양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시장 왜곡에 따른 부작용이 커질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 “10년전 지은 아파트 시세에 맞추라니…”
HUG로부터 분양 보증을 받지 못하면 아파트 분양이 불가능하다. HUG는 분양 보증 독점을 무기로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광명 등에서 분양보증서 발급에 앞서 분양가 심사를 진행한다. 분양가 심사의 명분은 이른바 ‘고분양가 지역의 보증 리스크 관리’이지만 HUG는 사실상 분양가 결정 권한을 갖는 허가권자처럼 군림하고 있다.
문제는 HUG의 분양가 통제에 합리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1년 내 분양했던 단지의 유무, 비교 대상 단지의 위치에 따라 사실상 ‘복불복’으로 분양가를 결정한다.
서울 중구 입정동의 재개발 단지인 ‘힐스테이트 세운’. 서울 도심의 마지막 알짜로 꼽히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지구 지정 13년 만에 들어서는 아파트다. 당초 올 6월 말 일반 분양을 계획했다가 최근 무기한 연기했다. HUG가 “분양가가 너무 비싸다”면서 보증서 발급을 거부한 탓이다.
HUG는 시행사 측에 일반 분양가격을 3.3㎡(1평)당 2740만원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이 때 HUG가 분양가 산정 기준으로 삼은 아파트는 ‘남산 센트럴자이’였다. 이 아파트는 2009년 12월 완공해 입주 10년이 된 낡은 단지로 가구 수도 270가구에 불과하다. 시행사 관계자는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이지 입지·연식·가구수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되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 삼성동에 분양하는데 ‘4km 떨어진 일원동 분양가에 맞춰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재건축인 ‘래미안 라클래시’의 경우, HUG는 3.3㎡ 당 4569만원 이하로 분양가를 책정하라고 요구했다. 올 4월 직선거리로 4km쯤 떨어진 일원동에서 분양한 ‘디에이치 포레센트’ 일반 분양가를 기준으로 삼은 금액이다.
조합 측은 “같은 강남구라는 이유만으로 삼성동 아파트 분양가를 일원동 시세에 맞추라는 건 말이 안된다”며 반발했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동에 입주한 ‘삼성센트럴아이파크’ 시세는 3.3㎡당 6000만원이 넘는다. 조합 관계자는 “삼성동과 일원동 집값이 엄연히 다른데 같은 구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일원동 시세에 맞추라는 것은 어이없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단지는 선분양을 포기하고 후분양으로 계획을 바꿨다.
지난 4월 분양한 서초구 방배동 방배경남 재건축인 ‘방배그랑자이’는 HUG의 ‘고무줄 잣대’ 때문에 이득을 본 경우다. ‘방배 그랑자이’ 분양가는 3.3㎡당 평균 4687만원으로 방배동 새 아파트 시세와 비슷하거나 더 비쌌다. 그런데도 HUG가 분양 보증서를 발급한 이유는 이 아파트 분양가 산정 기준이 방배동보다 시세가 높은 서초구 서초동(‘디에이치 라클라스’)이었기 때문이다. HUG가 같은 구 내에서 어느 단지를 비교 단지로 정하느냐에 따라 분양가를 멋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더 강화된 분양가 심사…줄줄이 후분양 전환
한술 더 떠 HUG는 지난달 24일부터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을 더욱 강화했다. 예컨대 강남구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경우, 같은 강남구에서 ▲1년 이내에 분양한 아파트의 분양가 ▲직전 분양가의 105%(1년 이내 분양 단지가 없을 경우) ▲주변 아파트(준공 10년 이내)의 시세 100%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제한한다. 이전까지는 1년 이내에 분양한 아파트가 없을 경우 직전 단지 분양가나 시세의 110%로 결정했다.
HUG의 과도한 분양가 통제로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후분양을 택하는 단지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 재건축 단지인 ‘래미안 원베일리’는 후분양을 검토 중이다. 반포동 일대 아크로리버파크나 래미안퍼스티지 시세가 3.3㎡당 9000만원에 육박하는데 HUG의 분양가 통제에 따라 방배동이나 서초동 분양가에 맞추면 분양가가 4000만원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강남뿐 아니다. 동작구 흑석뉴타운3구역은 당초 8월로 예정했던 일반 분양 계획을 연기하고 후분양 전환을 저울질하고 있다. 같은 동작구 사당3구역(‘이수푸르지오더프레티움’)이 최근 3.3㎡당 평균 2813만원에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으면서 더 이상 높은 가격으로 분양가 산정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흑석동 일대 아파트 시세는 3.3㎡당 3200만~3600만원대다. ‘방배13구역’, 잠원동 ‘신반포4주구’와 ‘반포 우성’, 강동구 ‘둔촌 주공’ 등도 후분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결국 신규 주택 공급 줄고 분양가 오를 것”
HUG의 ‘분양가 멋대로 규제’가 지속될 경우 서울 강남 중심으로 후분양이 보편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후분양은 사업 주체가 준공 시점까지 금융 비용과 미분양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그러나 조합 입장에서 무리하게 낮은 분양가로 선분양하기보다 후분양을 택하면 조금 늦어도 제값받고 분양이 가능하다. 대형 건설사 재건축 담당 임원은 “금리가 낮기 때문에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20% 정도 차이나는 상황이라면 후분양의 수익성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통제로 시장 왜곡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무리하게 시세보다 낮게 책정시킨 분양가는 결국 시세 차익을 노린 이른바 ‘로또 청약’을 부추겨 실수요자의 청약 기회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장기적으로 분양가를 밀어올리는 결과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분양가 통제가 계속되면 많은 아파트가 정책 기조가 바뀔 때까지 일반 분양을 미룰 것”이라며 “공급이 줄어 기존 아파트의 희소성이 부각되면 결국 서울 집값 상승이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