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6.26 06:12
[돈 버는 건축] 청담동 한적한 주택가에 지어진 새하얀 건물…전략적 사전 기획 설계로 성공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 옆. 좁은 골목길을 따라 3분쯤 걸어 들어가자 하얀 대리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지상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청담동 일대 고급 빌라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 건물은 산후조리원이었다. 지난해 6월 건물 준공과 동시에 문을 열었는데 고급스러운 외관과 차별화한 내부 설계로 올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을 만큼 인기가 높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 옆. 좁은 골목길을 따라 3분쯤 걸어 들어가자 하얀 대리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지상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청담동 일대 고급 빌라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 건물은 산후조리원이었다. 지난해 6월 건물 준공과 동시에 문을 열었는데 고급스러운 외관과 차별화한 내부 설계로 올 연말까지 예약이 꽉 찼을 만큼 인기가 높다.
사실 이 건물은 입지가 좋지 않다. 주택가에 둘러싸여 유동 인구가 거의 없는 한적한 뒷골목이다. 그런데 목 좋은 대로변 상가만큼 고객이 몰린다. 도대체 어떻게 입지적 약점을 극복하고 ‘돈 버는 건물’이 됐을까. 이 건물을 설계한 현상일 구도건축 대표는 “입지와 주변 상권을 철저히 분석해 최적 용도를 선택하는 전략적 사전 기획 설계의 성공 사례”라고 했다.
◇“건물 기획·설계에만 1년 넘게 매달려”
이 땅에는 원래 넓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 있었다. 건축주는 1983년부터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헐고 상가 주택을 구상했다. 노후에 안정적인 임대 수입을 얻고 싶어 했다.
문제는 이 땅이 이면도로 주택가로 유동 인구가 적어 세입자 구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던 것. 고민 끝에 현 대표는 역발상 아이디어를 냈다. 흔히 상가주택은 공사가 끝난 뒤 세입자를 모집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반대로 접근한 것. 해당 부지에 입점할 최적 업종을 먼저 찾아내고 그에 맞는 맞춤 설계를 진행했다.
현 대표는 건축 규정을 감안해 우선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로 큰 틀을 잡았다. 이후 2016년 하반기부터 최적 업종을 찾아내는 작업에 매달렸다. 우선 여러 세입자를 상대해야 하는 다가구주택과 소규모 매장을 입주시키는 방식은 제외했다. 고급 레스토랑과 사무실도 검토했지만 접근성이 떨어졌다. 주변에 호텔과 예식장이 있는 점을 감안해 미용실, 사진 스튜디오 등 웨딩 관련 사업장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강남구 삼성동에서 1호점을 운영하던 A산후조리원이 가까운 곳에 분점 확장을 모색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산후조리원 측은 건물 규모가 작아도 주택가와 공원이 있는 조용한 입지를 원했다. 현 대표가 설계 중인 건물이 딱 들어맞는 위치였다. 결과적으로 산후조리원 측과 건물 설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을 10년 동안 사용하는 조건으로 입점 계약했다. 나머지 4층과 5층은 3대(代)가 함께 사는 주택으로 꾸몄다.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기획·설계는 2017년 5월 착공할 때까지 약 1년이 걸렸다.
◇사전 기획 단계에서 미래 수요까지 고려해야
현 대표는 실제 공간을 사용할 산후조리원 관계자, 의료진과 함께 수차례 협의를 거쳐 공간 계획을 구체화했다. 산후조리원은 소방법, 보건법 등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해야 해 설계 단계부터 이를 반영하는 것이 유리하다. 현 대표는 비싸더라도 차별화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 수요를 감안해 외관부터 커다란 창과 직선이 두드러지는 디자인을 적용해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건물 내부 설계도 차별화했다. 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환기 시설 설치를 위해 일반 상가보다 층고를 높였다. 산모를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도 달았다. 건축주가 사는 4~5층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와 산모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총 2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전용면적을 최대한 차지하지 않는 곳에 배치했다.
산후조리원처럼 특수목적 시설로 설계하면 추후 세입자를 받는 데 제약이 된다. 이런 약점은 10년이란 장기 계약으로 해결했다. 현재 이 건물과 비슷한 청담동 일대 전용면적 300평 상가 건물의 임대 시세는 보증금 6억원, 월 임대료 6000만원 선이다. 하지만 10년간 공실(空室)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후조리원 건축주는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현 대표는 “도심 내 요양 시설 수요가 늘어날 것을 감안해 용도를 폭넓게 고려해 설계했다”면서 “산후조리원 계약 만료 이후에도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나 고소득 고령자를 겨냥한 요양 시설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건물을 지을 때 입지가 불리하면 병원·산후조리원 등 유동 인구가 적어도 특수한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획 설계를 적극 고려하는 것이 좋다”며 “기획 단계부터 지역 상권과 소비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비결”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