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5.22 04:10
[3기 신도시를 가다│①고양 창릉]
서울·일산 신도시 사이 창릉동 일대 813만㎡에 3만8000호
대부분 농지·임야…"500평 보상금으로도 고양시 아파트 못사"
'그린벨트 해제'만 기다리던 원주민들 예상못한 소식에 한숨만
“주민들은 그린벨트가 풀릴 날만 기다렸는데…. 완전히 날벼락이죠. 규제만 풀리면 서울과 가깝고 한국항공대학교도 있어 원룸이나 상가주택 지어 월세나 받으려고 했죠.”
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창릉동에서 만난 주민 원모(55)씨의 표정은 우울했다. 정부가 지난 7일 고양시 창릉동 일대 813만 ㎡를 3기 신도시로 지정한 탓이다. 그는 “신도시로 묶였으니 뭘 할 수도 없고, 이젠 토지 보상금이나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과 일산신도시 사이에 놓인 창릉신도시는 서울 경계에서 불과 1㎞쯤 떨어진 지역이다. 정부가 신도시를 발표하면서 전철망 확충 계획까지 발표했다. 경기도 주거지로는 최적의 입지여서 벌써부터 실수요자 관심이 높다. 지난 5년여 간 주변 지역이 조금씩 개발된 고양 삼송·원흥·향동지구도 있어, 창릉까지 개발되면 이 지역이 대규모 주거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 “그린벨트 풀릴 줄만 알았죠”…신도시 지정에 시름 깊어진 원주민
9일 오전 땅집고 취재팀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경의중앙선 화전역에서 3기 신도시로 지정된 창릉동 한가운데로 갔다. 20여분을 걸어들어가니 논과 밭, 풀로 뒤덮인 허허벌판에 창릉천이 흘렀다. 주변에는 건물은 거의 없었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버스조차 잘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7년만 지나면 3만8000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와 지하철(고양선)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서울 숲 두 배 규모의 대형 공원도 조성된다.
다른 주택 수요자들은 창릉신도시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창릉지구에 땅을 소유한 주민들은 신도시 지정 이후 불만이 많았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린벨트로 재산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 채 버텨왔는데, 3기신도시로 지정되면서 헐값 보상비만 받고 쫓겨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밭을 매고 있던 한 70대 노인은 “오랜 기간 이곳에서 농사를 졌는데, 보상금이 낮게 나오면 어디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곳에 3300㎡(1000평) 가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주민 A씨는 “불법인줄 알고서도 컨테이너를 짓고 이곳에 살고 있다”며 “재산이라고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땅뿐인데, 워낙 오래 전부터 그린벨트에서 풀린다는 소문이 무성해 땅을 팔지 않고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처럼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는 주민도 꽤 된다고 했다.
■ 보상 받아도 일산 30평 새 아파트 못사
통상 신도시로 지정되면 상당수 주민들이 보상금으로 ‘돈벼락’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 지역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무소에 따르면 화전동 그린벨트 땅은 3.3㎡ 당 평균 10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에 실거래되고 있다. 대부분이 농지와 임야다.
원주민친절공인중개사무소 정세훈 대표는 “통상적인 방식인 공시지가에 150% 곱한 값으로 토지보상이 이뤄진다”며 “이 방식을 적용하면 현지인 중에 대지 500평이상, 농지 3000평 이상의 대규모 땅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면 보상비로 고양에 30평대 아파트를 사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지방의 혁신도시나 세종시로 지정된 곳은 농촌 지역이어서 지주들이 대규모로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가 소위 ‘돈벼락’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과 붙어 있는 경기도 일대는 애초부터 보유하고 있는 땅의 규모가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이 지역의 1평(3.3㎡)당 시세가 100만~150만원인 농지의 표준지 공시지가 가격은 3.3㎡ 당 평균 70만원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인 보상 비율(공시지가의 150%)을 고려할 때 농지 500평(약1652㎡)을 소유한 경우 5억 초반 정도의 보상비를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세금으로 5000만~1억원 정도를 내면 4억원 안팎의 보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
농지 500평을 갖고 있어봐야 보상비로는 고양시에서 30평대 새 아파트를 사기는 힘든 셈이다. 친절공인 정 대표는 “창릉 일대 토지 소유자 중에 농지 500평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다들 고만고만하게 땅을 갖고 있어 신도시 지정에 대해 지주들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 주변 지역 온도차 있지만, 결국은 “공급 늘면 집값 떨어질 것” 우려
창릉동 주민 외에도 기존 일산신도시 주민들도 정부의 신도시 지정에 반대한다. 하지만, 고양선 등 교통 인프라 수혜를 입은 향동·삼송·원흥지구와 행신동 일대는 기대감과 우려가 함께 뒤섞여 있었다. 수색동에 있는 향동이화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3기신도시 지정 이후 문의 전화가 하루에 수십통씩 쏟아진다”며 “그동안부터 조금씩 가격이 오르고 있었지만, 발표 전까지 5억원대에 팔리던 30평대 아파트 분양권 호가가 6억원대를 넘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삼송지구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교통 인프라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있지만,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어 실거래가나 호가에 큰 변화가 없다”고 했다. 행신역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교통 인프라 혜택을 받는 단지는 역세권 아파트 몇 개 단지에 불과할 것”이라며 “행신동 아파트도 연식이 제법 돼 결국은 일산신도시처럼 타격을 받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방배동에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