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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계약 몰라 당했다'…원룸촌 휩쓴 대형 사기극

    입력 : 2019.04.29 18:44 | 수정 : 2019.04.30 17:00

    경기 용인시 명지대 전세 사기 사건과 관련해 '대학가 대규모 원룸 전세사기 기획단을 잡아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글. /경기도민 청원 홈페이지

    2015년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 근처에 있는 원룸 ‘더원하우스’에 전세금 5500만원을 주고 입주한 A씨. 지난해 7월 집주인 박모(71)씨에게 ‘방을 빼고 싶으니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집주인은 응답이 없었다. A씨는 9개월여가 지난 아직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불안한 마음에 같은 건물 입주민들과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 물어보니 A씨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최근 용인시에서 원룸 건물 6채를 소유한 임대사업자 박씨가 세입자 120여명이 맡긴 전세 보증금 약 40억원을 돌려주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A씨는 경기도민 청원 홈페이지에 “신탁회사에 의해 건물이 이미 공매(公賣)로 넘어간 상태인데도, 아직 자신이 사기 당한 사실을 모르는 주민들도 있다”며 “집주인과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가 담합해 대형 사기를 친 것”이라는 내용의 청원글을 올렸다.

    A씨를 비롯한 세입자 120여명이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이유는 ‘담보신탁’ 계약이 맺어진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집주인과 임대차계약을 맺은 탓이다. 땅집고가 명지대 보증금 사기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아봤다.

    ■ “신탁계약으로 소유권 넘어갔다”며 전세 계약

    담보신탁계약 원리. /이지은 기자

    ‘담보신탁’이란 집주인이 형식적인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넘긴 후 대출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집 주인이 임의로 집을 처분할 수 없고,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담보 안정성이 높아져 집주인이 더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집주인이 이렇게 신탁 계약이 체결된 집을 임대하려면 일종의 계약서인 ‘신탁원부’에 설정된 ‘우선수익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 이 사건에서 우선수익자는 집주인에게 대출해 준 금융기관(예가람저축은행 등)이다. 우선수익자 동의 없이 임대차계약을 맺으면 집이 경·공매로 넘어가도 세입자 보증금이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박모씨가 운영하는 '더원하우스'. /네이버 거리뷰

    박씨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긴 채 B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임모(53)씨와 함께 우선수익자 동의 없이 120여명과 무단 전세 계약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애초에 임대차계약을 단독으로 맺을 권한이 없는 박씨와 임씨가 전세금 40억여원을 챙긴 셈이다.

    명지대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 대부분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어서 신탁 계약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점을 이용해 집주인이 사기친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원룸 건물 6채 중 5채가 2012년부터 신탁회사인 코리아신탁에 수탁된 상태였다. 나머지 1채는 임씨 소유였다. 현재 피해자는 물론 신탁회사 모두 박씨, 임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결국 코리아신탁은 우선수익자인 예가람저축은행으로부터 박씨의 채무불이행을 통보받고 지난 3월 11일 회사 소유 원룸 5채를 공매에 내놨다.

    ■ “우선수익자 제치고 전세금 돌려받기 어려워”

    공매로 나온 원룸 건물 5채의 감정가는 79억1000만원이었지만 5차례 유찰되면서 최저 입찰가가 46억7100만원으로 59% 정도 떨어진 상태다. 코리아신탁 관계자는 “건물이 팔리면 사무처리 비용과 세금을 공제한 뒤 법원에 공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우선수익자보다 돈을 돌려 받는 순위가 낮은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가람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땅집고 취재팀 질문에 “본인이 아니면 답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운영하는 '더원하우스' 인터넷 커뮤니티에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더원하우스 카페

    피해자들은 박씨가 체결한 신탁 계약에 따라 추후 건물이 어떻게 처분될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A씨는 “집주인은 올해 2월까지도 신입생들 대상으로 전세 계약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탁 계약한 건물에 입주하려면 ‘신탁원부’ 발급은 필수

    전문가들은 담보신탁 부동산이 일반인에게는 생소해 임대차 계약을 잘못 맺고 사기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해 5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라프하우스 1동’ 건물에서도 명지대 전세 사건과 마찬가지로 세입자 142명이 총 1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코리아신탁 측은 “피해를 막으려면 등기부등본과 함께 신탁원부를 발급받아 계약 내용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사건처럼 주택이 신탁회사에 맡겨지면 등기부등본에 위탁 사실과 함께 ‘신탁원부 번호’가 공개되고, 등기소나 인터넷을 통해 신탁원부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한 부동산전문변호사는 “신탁회사 소유로 된 건물이라면 신탁원부에 임대차계약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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