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4.24 18:04 | 수정 : 2019.04.25 07:44
마리오 보타(Botta·76)는 서울 강남 교보타워, 삼성미술관 리움을 설계한 스위스 출신의 스타 건축가다. 16세에 처음으로 건축설계를 시작했다. 보타는 1985년 베통 건축부문상, 1989년 CICA 건축상을 받았다.
주재료는 벽돌을 주로 쓰고 탑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벽돌과 탑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나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에서 잘 나타난다. 현대건축의 전설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주재료는 벽돌을 주로 쓰고 탑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벽돌과 탑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이나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에서 잘 나타난다. 현대건축의 전설 르 코르뷔지에, 루이스 칸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서울도 아닌 경기도 화성시에 성당을 짓고 있다. 2011년부터 화성 남양성모성지에 들어서는 ‘통일기원 남양성모마리아 성당’ 설계를 맡았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목숨을 잃은 순교자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곳. 남양성모마리아대성당은 2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성당이다. 오는 9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서울도 아닌 수도권 외곽에 어떻게 세계적인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성당 건축이 가능했을까. 마리오 보타는 “성지를 조성한 이상각 신부의 열정에 감명해 설계를 맡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건물 옆에는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피터 줌터가 설계한 경당도 들어선다. 남양성지성당은 그가 지금까지 지은 성당 중 가장 크다. 땅집고는 성당 건축 마무리를 위해 경기도 화성을 찾은 그를 만나 성당과 그의 건축세계에 대해 물었다.
―성당은 어떤 모양으로 짓나. 특별한 의미가 있나
“남양 성지 성당은 순교자들의 기억이 담겨있는 곳이다. 그 역사가 이 공간의 성스러움의 근원이 된다. 성당은 성지의 깊숙한 안쪽 계곡에 있어 성당이 성지를 포옹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 포옹은 건축물이 있는 장소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품는다.
성당엔 40m 높이의 탑 두 개가 지어진다. 반원 모양 탑 사이엔 열린 공간이 나온다. 햇빛이 들어오면 두 탑 사이로 햇빛이 통과하고, 그 빛은 성당 내부를 밝힌다. 1층은 언덕과 언덕 사이에 있어 땅의 일부처럼 파묻힌 모양이다.
상업적인 현대 도시의 건물들은 대부분 시간, 기억과 단절돼 있다. 하지만 도시는 사고파는 물건처럼 인식돼선 안된다. 성지 성당은 누구나에게 열려 있어 아무나 접근할 수 있다. 이 공간을 통해 현대인들은 잊혀져가는 순교자들을 만나고 성스러운 의미를 되살리는 공간이 될 것이다.”
―많은 종교 건물을 지었다. 성스러움은 건축에서 어떻게 표현하나.
“종교 건축은 그 어떤 것도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가치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공간의 맥락과 중력을 잘 이용해야 하고, 빛도 중요하다. 문턱을 넘어서면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영적 경험을 위해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건축적 기능에 집착하기보다 완성된 한 공간을 통해 어떤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신이 건축 일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물질에 빠져 사는 것 같다. 돈을 위해 사는 것만 같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생계도 중요하지만 그냥 그 일을 하기 위해 한다. KTX를 타고 목포를 다녀오면서 아파트들이 줄줄이 늘어선 걸 봤는데, 이는 너무 수익과 관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건축은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증언한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현대를 증언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선물이다. 단지 기능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靈的) 이야기를 하는 매개로서의 건축의 힘을 믿는다. 이 순간, 이 장소에서 그 메시지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한국에 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 것 같은데.
“30년 전 강남 교보타워 설계를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당시엔 산이나 들에 농촌 풍경이 눈에 띄었는데, 요즘은 건물이나 다리, 아파트 등 인공구조물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한국의 변화 속도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성당을 짓는 화성만 해도 처음 설계를 맡았던 2010년대 초반엔 이렇게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 이제 10년 가까이 됐는데, 갑작스레 상권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생겼다. 이런 나라는 찾기 어렵다.”
―어떤 건축가로 기억되길 원하나.
“건축 일을 하는 건 표현에서 오는 기쁨 때문이다. 내가 지은 건물에 와서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을 보면 아주 기쁘다. 소비로 점철된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친근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가도 건축주와 갈등을 빚나.
“우선 자신부터 설득해야 한다. 남을 설득할 땐 자신이 만들어 낸 건물이 가장 큰 도구가 된다. 좋은 사례와 포트폴리오를 많이 만들면 건축주도 설득된다.”
―건축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건축은 언제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건축만큼 환상적인 일이 없다. 기자가 좋은 기사를 쓰거나 시인이 좋은 시를 쓸 때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건축에서도 이상적인 작품을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삶의 중요한 것, 또는 아주 좋은 것을 만들었을 때는 그것이 자기에게 주는 유익이 크기 때문에 돈을 받고 안 받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을 구현되면 충분히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