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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내 땅 절대 못 줘!"…세운4구역에 무슨 일이?

    입력 : 2019.03.29 06:29 | 수정 : 2019.03.29 09:07

    “재개발 구역에서 토지 감정평가 금액이 공시지가보다 낮게 나온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이럴 수가 있나요.”

    지난 22일 저녁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 조문을 마치고 빈소에 자리잡은 일부 조문객들 사이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날 별세한 이모(79)씨는 서울 도심 재개발 구역 중 하나인 세운4구역 조합원이었다. 유족들은 “이씨가 지난달 말 세운4구역에 보유한 토지의 감정평가 금액이 형편없이 낮게 나온 사실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고,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이씨와 가까웠던 다른 조합원들도 “이대로 내 땅을 빼앗길 수는 없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세운4구역은 서울 종로4가 일대 금싸라기 땅(약 3만㎡)으로 연면적 30만㎡ 규모 대형 복합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총 사업비만 7000억원에 도심권 최대 복합시설로 기대를 모았던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국내 최초이자 마지막인 공공시행자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되면서 각종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조선DB

    ■ “공공시행자 방식이 갈등 촉발”

    “그 때는 누가 알아겠어요. 공기업에서 알아서 잘 해준다고 하니까 민간업자보다 낫겠지라는 생각에 동의했던 것이죠.”

    세운4구역 토박이 땅주인인 안모씨는 “재개발 얘기만 나오면 울화통이 치민다”면서 “차라리 종전 방식으로 할걸 그랬다”고 했다. 실제 세운4구역은 다른 재개발 사업과 방식이 다르다. 토지주들이 결성한 조합이 시행사가 아니다. 2006년 주민 동의로 공기업인 서울도시주택공사(SH공사)가 시행을 맡고 있다. 국내 최초의 공공시행자 방식이다.

    SH공사가 조합 대신 개발 비용을 먼저 투입해 사업을 완공한 뒤 공사비를 회수하는 구조다. 개발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모두 지주들 몫이다. 사업 초기 지주들 부담이 적고 공기업이 진행한다는 점에서 믿을 수 있고 인허가도 쉬울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상당수 점포가 비어 있는 세운4구역 일대. /네이버 지도

    하지만 조합원들은 SH공사와의 잘못된 만남이 결국 갈등의 출발점이 됐다고 주장한다. 애초부터 잘못된 사업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금새 진행될 줄 알았던 사업은 벌써 13년이 넘도록 첫삽조차 뜨지 못한 상태다.

    조합원들은 사업성도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SH공사는 세운4구역에 전용 29~62㎡ 481실로 구성된 오피스텔 2개 동(棟), 호텔 2개 동, 오피스 5개 동과 판매시설을 개발할 계획이다. 시공은 코오롱글로벌이 맡았다. 내년에 철거와 문화재 발굴을 거쳐 2021년 착공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지주들 사이에는 회의적이 시각이 많다. 최근 서울시내 호텔 공급 과잉, 오피스 공실률 증가 우려가 커지고 있는 탓이다. 이렇다 보니 SH공사가 최근 조합원 대상으로 진행 중인 오피스와 업무·판매시설에 대한 분양 실적이 저조하다. 비대위 측은 전체 조합원 중 70% 정도가 분양받는 대신 현금 청산(보상)을 원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세운4구역 재개발 조감도. 호텔과 오피스텔, 오피스 등이 들어선다. /SH공사 제공


    비대위 관계자는 “서울시가 지주들 땅에, 지주들 돈으로 사업을 하는데 수익성이 좋을 리가 없어 애당초 잘못된 사업 방식”이라며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동대문 DDP같은 예술 작품을 남기겠다는 생각인데 설계와 공사에 추가 비용이 들어가다 보면 막대한 손해를 전부 지주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10년간 공시지가 동결, 이보다 낮은 감정가격

    지주들의 불만은 또 있다. 바로 SH공사가 지주 이익보다 사업비 회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SH공사는 시행사로 참여한 이후 13년여간 설계비, 기존 상인 영업보상비 등으로 1500억여원을 먼저 썼다. 오영호 비대위원장은 “SH공사가 지주들 이익보다 토지 보상비를 낮춰 지난 10년간 투입한 1500억원의 손실을 메우는데만 혈안이 돼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현금 청산 대상자들이 받게 될 보상비는 예상보다 턱없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보상비는 공시지가와 감정평가금액을 바탕으로 계산한다. 문제는 세운4구역에 속한 16개 표준지의 공시지가가 10년 동안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것. 예지동 114번지의 경우 공시지가가 2009년 1㎡당 1110만원에서 지난해 1188만원으로 10년 동안 6% 오르는데 그쳤다. 서울 표준지 공시지가는 2012년 이후 매년 3~6%씩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예외적이다.

    세운4구역에 속하는 한 토지의 2009년 이후 공시지가 변동. /국토교통부

    지난달 말 지주들에게 통보된 토지 감정가(종전자산평가액)는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우가 속출했다. 공시지가 1㎡당 1188만원인 예지동 114번지의 경우, 토지 감정가는 1180만원으로 오히려 낮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세운4구역의 276개 필지 중 종전자산평가액이 공시지가보다 높은 곳이 171필지(62%), 평가액과 공시지가가 같은 곳은 14필지(5%), 평가액이 공시지가보다 낮은 곳은 91필지(33%)였다.

    재개발 구역 토지의 공시지가가 10년간 오르지 않은 것과 종전자산평가액이 공시지가보다 낮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평가사는 “SH공사 입맛대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면서도 “일반적으로 토지평가 금액이 공시가격보다 30~40%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을 생각하면 예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 “공시지가 임의로 낮출 수 없어” vs. “개발 강행 이해 못해”

    SH공사는 세운4구역의 경우 2009년 이전까지 공시지가가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지 그 이후 상승률을 일부러 낮춘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SH공사 관계자는 “표준지 공시지가는 관할 구청에서 선정한 감정평가법인을 통해 산출하기 때문에 임의로 낮출 수 없다”면서 “보상비가 줄어도 SH공사가 얻는 이익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로안감정평가사사무소 박효정 감정평가사는 “서울시와 SH 공사 잘못으로 장기간 사업이 표류하며 발생한 매몰 비용을 종전자산 평가액이나 현금청산 평가액에 반영한다면 정당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오영호 비대위원장은 “이웃한 세운3구역에서는 ‘노포’(老鋪)를 가진 몇몇 토지주를 보호한다며 어떻게든 사업을 지연하려는 서울시가 4구역에서는 토지 보상가를 낮추면서 개발을 강행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적정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SH공사 등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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