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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모여 사는 '억만장자 거리'의 굴욕

  • 함현일 美시비타스 애널리스트

    입력 : 2019.03.12 06:00

    [함현일의 미국&부동산] 맨해튼의 럭셔리 주택도 불패(不敗) 신화 끝나나

    2017년 겨울로 기억한다. 뉴욕에 출장을 가서 센트럴파크 사우스쪽에서 식사를 했다. 갑자기 동료가 창문 밖 고층 빌딩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에 1억 달러가 넘는 집이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물 전체가 아니라 그 건물 속 집 한 채가 1000억원이다. 주인은 우리에 ‘델(Dell)’ 컴퓨터로 유명한 ‘델 테크놀로지스’의 설립자이자 CEO였다. 그의 성이 델이다. “역시 뉴욕, 맨해튼이구나!”란 생각을 했다.

    지상 79층 1개동에 118가구 규모로 신축 중인 '220 센트럴파크 사우스' 아파트.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펜트하우스가 있다. /6sqft

    그리고 올해 초 더 놀라운 뉴스가 떴다. 켄 그리핀이라는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가 이 지역에 건설 중인 ‘220 센트럴파크 사우스’의 펜트하우스를 2억 3800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기사였다. 2500억원이 넘는 돈으로 4개 층 2만 4000제곱피트(약 675평)의 주택을 구매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주택 거래 가격이다. 세계 기록일지도 모른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여기가 바로 ‘억만장자들의 거리(Billionaire's Row)’였다. 오늘은 억만장자들의 뉴욕 부동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억만장자 거리는 초고층 콘도로 시작

    초고층 콘도 타워로 상징되는 억만장자 거리의 시작은 2014년 완공된 ‘원57’이다. 뉴욕 부동산 시장의 거물인 게리 바넷의 엑스텔이 개발했다. 이곳이 바로 마이클 델이 1억 달러로 두 층의 펜트하우스를 산 건물이다.

    맨해튼 센트럴파크 인근 57번가에 있는 9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원57'. 델컴퓨터의 창업자가 펜트하우스를 사들여 화제가 됐다. /조선DB

    2010년 게리 바넷이 이곳에 초고층 럭셔리 곤도를 지으려 했을때만 해도 모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때는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던 때였다. 이런 프로젝트에는 대출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는 미국 밖에서 돈을 구했다. 두 군데의 아부다비 투자펀드에서 투자를 받아냈다. 그의 무모한은 의외의 섬공으로 이어졌다. 완공을 앞두고 경기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면서 몇 백억원짜리 콘도가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미국의 억만장자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억만장자들이 몰려왔다.

    그 후 426m의 ‘432 파크 에비뉴’와 200m가 넘는 ‘252 이스트 57 스트리트’가 연달아 시장에 나오면서 이 지역이 ‘억만장자들의 거리’로 불리게 됐다. 보통 남북으로는 57번가부터 59번가까지 동서로는 컬럼버스 에비뉴에서 파크 에비뉴까지를 억만장자 거리로 분류한다.

    맨해튼의 초고층 럭셔리 콘도 '252 이스트 57 스트리트'. /슬라이스 아키텍츠

    ■2010년 이후 60% 이상 가격 상승

    그야말로 '붐' 이었다. 뉴욕 부동산 중개사이트인 스트리트이지닷컴(streeteasy.com)에 따르면 남북으로 57번가에서 59번가까지, 동서로 파크 에비뉴에서 브로드웨이까지의 주택 가격 중간 값은 2010년 126만1406달러에서2018년 207만2500달러로 64%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뉴욕 맨해튼 전체 집값은 25.7% 오르는 데 그쳤다.

    항상 ‘붐’이 불러오는 것이 있다. 바로 ‘과잉’이다. 연달아 초고층 콘도가 히트하자, 너도나도 신규 개발에 뛰어들었다. 공급 과잉이 시작된 것이다. ‘원 57’로 억만장자 거리의 초고층 주택 붐을 불러온 엑스텔도 세계 최고층 주택 건설을 시작했다. 바로 470m 높이의 센트럴 파크 타워다.

    2011년 ‘원57’이 분양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맨해튼의 신규 주택 물량은 277가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9년 공급 예정인 맨해튼 지역 콘도는 3763개다. 2020년에는 4539개가 추가로 공급될 예정이다. 시장에서 쉽게 소화할 수 없는 물량이다.

    맨해튼에 우뚝 솟은 '432 파크 애비뉴'. /CTBUH

    ■39%는 손해 보고 판다

    센트럴파크 타워를 비롯해 주변 신규 초고층 콘도들이 분양에 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구매자 유치를 위해 분양가 대폭 할인은 물론 중개수수료 인상, 연(年) 관리비 무료 등의 몇 십만 달러짜리 인센티브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500만 달러 이상 뉴욕의 콘도 가격은 약 28%나 떨어졌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뉴욕시에서 거래된 주택 중 7.7%는 최초 매입자 입장에서 손해를 기록했다. 럭셔리 콘도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약 39%가 손해를 봤다. 맨션 글로벌에 따르면 2018년 1~5월까지 400만 달러를 넘는 맨해튼 럭셔리 주택의 절반 이상은 할인된 가격에 거래됐다.

    현 주택 건물 중 최고층인 ‘432파크 애비뉴’의 95층 펜트하우스도 굴욕을 맛봤다.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지 2년이 지나도 거래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8200만 달러의 가격이었다. 결국 자존심을 구기고, 약 4000만 달러의 두 개 유닛으로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원57도 예외가 아니다. 2014년 3200만 달러에 거래된 콘도가 2016년엔 2350만 달러에 팔렸다. 이자를 제때 못내 은행에 압류된 경우도 있었다, 2014년 5090만 달러에 산 주택이 은행 압류로 2017년 옥션에 나와 3600만 달러에 거래됐다.

    432 파크 애비뉴의 내부. 화려한 인테리어와 전망이 뛰어나다. /스트리트이지 닷컴

    ■투자 목적 아닌 경우가 많아

    사실 부자들도 안다. 뉴욕의 초호화 주택을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투자 목적으로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 미국 부자들은 세금 헤택을 위해, 러시아나 중국 부자들은 자국에서 해외로 자금을 합법적으로 옮기기 위해 고급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돈세탁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도 있다. 2016년 미국 정부가 이런 익명의 구매자들을 조사하기로 하고, 중국 정부가 해외 송금을 제한하면서 뉴욕 럭셔리 부동산 시장은 더 냉랭해졌다.

    뉴욕 부동산의 불패 신화를 들어 이런 가격 하락과 판매 부진이 일시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 기대 이상으로 너무 올랐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가격 조정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땅을 더 만들 수 없는 뉴욕 맨해튼의 경우,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른다는 논리다.

    여기서 보너스 이야기 하나. 뉴욕시가 지난해 이 억만장자 거리의 58번가에 호텔을 리모델링해 노숙자 보호소를 짓기로 했다. 억만장지와 노숙자들이 한 거리에 사는 곳, 이게 뉴욕이고,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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