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3.04 05:52
[발품리포트│가든파이브] 청계천 상인 수용 위해 1.3조 들여 지은 '툴동'
계획보다 2배 비싼 분양가에 공구상 외면…1층 상가도 대부분 비어 있어
2016년 매각공고에도 인수자 안 나타나…"대기업 와도 못 살릴 것" 평가도
지난 22일 오전 11시쯤, 지하철 8호선 장지역 3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가든파이브(Garden5)’ 단지를 이루고 있는 큼직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가든파이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유통·상업 시설 단지다. 지하철 역에서 나온 사람들은 일제히 ‘라이프(Life)동’으로 들어갔다. 라이프동에는 NC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 각종 쇼핑몰이 입점해 있어 제법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라이프동 옆에 난 횡단보도를 건너 공구상가인 ‘툴(Tool)동’으로 넘어가자마자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출입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텅텅 빈 상태로 줄지어 있는 점포들이 나타났다. 툴동 1층의 E존 상가 20여 곳 중 문을 연 곳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인 ‘이디야 커피’ 한 군데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산업용재 전문매장 구역인 2~3층과 5층도 점포들이 텅텅 빈채로 방치돼 있었다.
원래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복원사업(2003~2005년)으로 장사 터전을 잃은 일대 상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1조3000억원을 들여 지은 건물이다. 라이프·웍스·툴 3개 동 연면적을 모두 합하면 82만㎡ 규모다. 강남 코엑스몰의 7배,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2배 이상이다. 라이프동은 의류·식품 매장, 웍스동은 기업과 자영업자의 오피스가 입주하는 용도로 지었다. 툴동은 청계천 주변 공구상과 가구업체들이 입점하는 용도다.
올해는 가든파이브 입점 한 지 11년째 되는 해다. 그사이 라이프·웍스동은 입점도 제법 됐고 상권도 살아나고 있지만, 유독 툴동만 텅텅 빈 채로 남아있다. 툴동 2270실 중 721실이 10년 넘게 방치되어 있는 것. 라이프동 공실률은 6%(총 5366실 중 공실 338실), 웍스동 공실률은 10%(총 734실 중 공실 78실)에 비해 툴동의 공실률은 31%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송파구의 끝자락이지만, 그래도 강남권인데 가든파이브의 툴동이 ‘유령 빌딩’처럼 남겨진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시 당초 약속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분양…청계선 상인들 등돌려
툴동은 SH공사가 가든파이브를 최초 분양 할 때부터 인기가 없었다. 지난 2009~2010년 청계천 상인 6만여명 중 가든파이브 입주 의사를 밝힌 상인은 6097명. 서울시가 이들에게 특별분양권을 줬지만 계약체결율은 16.8%(1028명)에 그쳤다.
당초 계획보다 높은 분양가가 청계천 상인들이 입주를 포기한 결정적 이유다. 가든파이브 준공 전 서울시는 상인들에게 툴동의 전용 24~25㎡(7평)짜리 상가 한 칸을 7000만~8000만원이면 분양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막상 분양 때는 SH공사가 1억1000만~4억원 정도를 제시했다. 비싼 분양가에 상인들이 등을 돌리면서 시작부터 툴동의 운명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분양 후에도 청계천 상인들의 ‘툴동 탈주’는 계속됐다. 건물의 얼굴 격인 1층 상가 대부분이 공실인 것을 본 상인들이 일찌감치 장사를 포기한 것. 1층 상가는 분양가가 4억원을 넘길 정도로 비쌌기 때문에 청계천 공구상들이 입점할 수 있는 허들이 높아 아직까지도 비어있다.
상가의 얼굴격인 1층 관리가 안된 탓에 실제 공실률보다 건물이 더 휑해 보여 상권이 형성되지 않으니 임대 계약했던 상인들도 임대차 기간 5년을 꽉 채운 지난 2015년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자진 퇴거했다. 가든파이브 툴동에 입점해 있던 한 상인은 “초기에 월 100만원 정도되는 임대·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강제집행·명도소송으로 어쩔 수 없이 나간 상인들도 수두룩 하다”고 말했다.
2016년 기준 가든파이브에 남은 청계천 상인은 총 80여명이었는데, 이게 마지막 집계였다. 툴동 상인들을 대상으로 편의 식품 배달업을 운영하고 있는 안주성(32) ‘문열면편의점’ 대표는 “실제로 지금 툴동에 남은 청계천 공구상인들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A베어링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모씨도 “원래 공구상이라는 게 한 데 모여 있어야 다 같이 잘 되는 시스템인데, 청계천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싹 빠져버리니 상권 형성이 계속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기 없는 산업용재상가…팔지도 못하고 방치되는 툴동
가든파이브 분양·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SH공사 입장에서도 툴동은 골칫덩이다. SH공사의 가든파이브사업단 관계자는 “서울시 사업이어서 상가 분양·임대까지 모두 전담하고는 있지만, SH는 원래 임대 아파트 사업만 하던 회사여서 초기에 상가 기획도 좀 문제가 있었고 분양·운영 노하우도 부족한 점은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청계천 상인들을 위해 툴동 상가 전체를 7평 단위로 쪼개버린 탓에 건물 활용에도 제약이 있다. SH공사는 지난 2016년 툴동 일괄매각 공고를 내기도 했지만,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
■한 번 망한 상가 살리는 데는 막대한 투자 필요…대기업 들여와도 힘들 것
현재 SH는 툴동 1층 상가를 용도변경해서 대기업 식음표 매장을 우선 입점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든파이브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헬리오시티(9510가구)’가 입주한 것도 호재다. 인근 위례신도시도 차차 조성 단계를 밟고 있어 흐름을 잘타면 상권이 살아 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망한 상권’이라고 낙인 찍혀온 툴동 상권이 쉽게 활성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유령 상가 이미지를 벗기 위한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데, 공기업인 SH공사가 사기업처럼 기업의 운명을 걸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권강수 한국부동산창업정보원 이사는 “SH가 직접 회생 계획을 짜는 것보다는 전문 업체에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고 위탁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