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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고시촌인데 신림은 뜨고 노량진은 폭망한 이유

    입력 : 2019.02.01 05:40

    [발품리포트] 신림 뜨고 노량진 진다…고시촌 ‘양대산맥’의 엇갈린 운명

    남부행정고시학원 건물 외벽에는 4~5층 공간을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지은 기자

    텅 비어있는 노량진 일대 학원 상가 건물. /이지은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대로변에 있는 한 유명 고시(考試) 학원에 ‘4~5층 임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 대로변은 공단기·박문각·해커스·메가스터디 등 대형 공무원 시험 학원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 고시 학원도 원래 대형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임차해 운영하던 곳이다.

    골목길로 들어가니 지상 2~5층짜리 다가구·다세대주택과 고시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산다. 한 고시원에 들어가 “둘러봐도 되느냐”고 묻자, 주인은 “빈 방이 많아 원하는 때 입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서점 건물에 각종 공무원 시험 강의를 알리는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 있다. /이지은 기자

    이날 서울 관악구 신림동 거리 곳곳의 학원·서점 건물 외벽에 공무원 시험별 강의 과정을 알리는 전단이 빼곡히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2~3년 전만 해도 사법고시 준비반을 홍보하는 전단이 붙어 있던 자리다. 이번엔 신림동의 고시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연초라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아 빈 방이 없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도별 공무원 시험 준비자 추이. /한국직업개발능력원

    서울을 대표하는 고시촌인 노량진동과 신림동이 엇갈린 운명을 맞고 있다. 노량진은 비싼 임대료와 열악한 환경 탓에 수험생들에게 외면받는 반면, 신림동은 사법시험 폐지라는 위기 속에서도 공무원 시험 중심으로 체질 변신에 성공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취업난에 공무원 시험 수험생이 갈수록 늘어나는 가운데, 두 고시촌의 부동산 시장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법시험 폐지에도 신림은 ‘전화위복’, 노량진은 ‘폭망’

    사법고시 폐지 이후 신림동에도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등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겨냥한 학원들이 생겨났다. /이지은 기자

    신림동 고시촌은 작년 사법시험이 완전히 폐지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대거 빠져나갈 때만 해도 이 곳 원룸·고시원 주인들은 ‘이제 망하는 일만 남았다’며 걱정했다. 그런데 주변 학원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사법시험 준비반 대신 로스쿨·변호사 시험 준비반을 만들고, 그동안 노량진에만 집중됐던 공무원 시험 강의까지 들여왔다.

    신림동의 체질 개선은 성공적이었다. 공무원 수험생이 대거 유입되면서 한 때 늘어났던 공실과 빠졌던 임대료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부동산중개 스타트업 ‘집토스’의 이재윤 대표는 “사시 폐지 직후엔 보증금 500만원에 월 45만원이던 방세를 5만~10만원 정도 깎아주겠다는 원룸 주인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현재는 사시 폐지 이전으로 원룸 시세가 회복됐다”고 말했다.

    노량진 일대 원룸, 고시원 건물. /이지은 기자

    반면, 공무원 수험생을 신림동에 빼앗긴 노량진은 타격을 입었다. 노량진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B씨는 “현재 방 10개 중 3~4개 꼴로 비어있는 상태”라며 “연초에 이렇게 공실이 많았던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노량진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노량진 원룸 월세는 50만원 이상이 기본일 정도로 비싼 편이라 월세 수익을 올리는 집주인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학생들이 없으니 ‘반전세’ 수준으로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낮춰주겠다는 집주인들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학원 건물 지하에 있어 고시생들이 많이 찾던 '고구려식당'이 폐업하고, 그 자리에 PC방이 생겼다. /네이버 로드뷰

    노량진에 있던 몇몇 공무원 시험 학원은 신림동으로 옮기거나 문을 닫았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한 고시 학원 건물에는 6개월째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는 상태다. 고시생 수요에 의존하던 상권도 침체됐다. 노량진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한 끼에 4500원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학생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했던 ‘고구려 식당’이 2018년 폐업한 것이 노량진 학생 수 감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말한다.

    신림동보다 경쟁력 낮은 노량진 원룸…수요 맞춘 변화 필요해

    출입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낡은 노량진 고시촌의 한 원룸 건물. /이지은 기자

    노량진의 비싼 임대료와 열악한 주거 환경도 이 같은 상황을 부채질했다. 현재 노량진에서 전용 10㎡(3평) 정도 되는 원룸은 월세 50만~60만원에 보증금 500만~1000만원 정도다. 고시원은 30~40만원 선으로 원룸보다는 저렴하다. 학생들은 “공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보려고 학원과 가까운 노량진에 살고 있긴 하지만, 월세는 비싸고 환경은 최악”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신림동 고시촌에 줄줄이 들어선 원룸과 고시원. /이지은 기자

    반면 신림 고시촌인 대학동 원룸 월세는 40만~50만원으로 노량진에 비해 10만~20만원씩 저렴하다. 고시촌이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어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과 방에서 보내는 수험생들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신림동에 살면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고, 주거 환경도 대체로 노량진보다 낫다.

    유명 고시 학원과 제휴해 월세를 할인해주겠다고 홍보하는 노량진 원룸과 고시원 주인들이 늘고 있다. /이지은 기자

    학생들이 신림동으로 이동하고, 숙식 가능한 기숙사를 함께 운영하는 대형 학원들까지 생겨나자, 위기감을 느낀 몇몇 노량진 고시원·원룸 주인들은 유명 학원과 제휴를 맺고 수강 등록한 학생들에게 월세를 1만~3만원 정도 할인해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고시촌이나 대학가 등 청년 주거 비율이 높은 지역은 보통 집주인들의 주거 환경 개선 의지가 낮은 편”이라며 “노량진이나 신림 고시촌도 이제 수요에 맞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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