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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공구상 거리의 변신…'전리단길'을 아시나요

    입력 : 2019.02.03 04:40

    [발품리포트] 전국으로 확산하는 ‘~리단길’, 이유가?

    지난 25일 오후 부산 전포동 '전리단길'에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상혁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 지하철 서면역에서 동쪽으로 300m쯤 떨어진 곳에서 공구 상가 건물과 ‘토요코인호텔’ 사잇길로 30m 정도 더 들어가자, 3~5층 높이 낡은 벽돌 건물이 밀집한 골목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정사각형 모양으로 들어선 약 20개 건물에 식당·카페·술집·꽃집·가죽공방 등이 영업 중이었다. 큰 길 건너 ‘전포동 카페거리’부터 20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옛 공구상을 특색있는 점포들로 개조한 전포동 전리단길. /땅집고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 공구상가 밀집지였다. 그런데 2017년 전후로 낡은 공구 상가 건물을 개조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점포로 속속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아직 영업 중인 공구 상가와 20대가 좋아하는 카페들이 기묘하게(?) 동거하는 모양새다. 특색있는 카페가 늘어나면서 부산시민들 사이에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을 모방한 ‘전리단길(전포동+경리단길)’로 불리고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거리 모습이 신기한듯 곳곳에 휴대폰 셀카를 찍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 시끌벅적한 먹자골목 대신 특색 있고 아기자기한 스토리가 넘쳐나는 상권이 2030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서울 경리단길이나 마포 연남동이 떴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 깜깜하던 공구 거리가 2030 ‘핫 플레이스’로

    이날 ‘전리단길’ 곳곳에는 새로 점포를 내기 위해 내부 리모델링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구상이 있던 한 건물 1층에 돈까스집이 새로 오픈하기 위해 공사 중이었다. 바로 앞 건물 2층에는 미용실 터에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전포동의 홍콩부동산 박지우 실장은 “전리단길은 5년 전까지 공구상들이 퇴근한 오후 7시만 돼도 불빛 하나 없는 낙후한 동네였지만 2~3년 전부터 20~30대 젊은 사장들이 연 가게로 밤 늦게까지 북적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리단길'은 오래된 공구 도매상이 있던 자리를 리모델링해 만든 점포들이 대부분이다. /한상혁 기자

    젊은 창업가들이 전리단길을 찾는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임대료가 저렴하다. 이 곳에서 400m 쯤 떨어진 ‘전포동 카페거리’에서 카페나 식당을 내려면 위치와 면적에 따라 월 200만~300만원을 줘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월 100만~150만원이면 점포를 낼 수 있다. 1년 전 전리단길에 꽃집을 연 고효경(30)씨는 “임대료와 권리금이 저렴한데 젊은이들이 SNS(소셜미디어)를 보고 찾아오는 유명 카페와 식당이 늘어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유동 인구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전리단길에서 영업하는 젊은 창업가들은 비싼 임대료를 내고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찾아가기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점포를 낸 후 실력과 개성으로 고객을 끌어모은다. 주로 SNS와 입소문으로 손님을 모으기 때문에 다른 상권에서는 인기가 없는 2~3층 점포 창업도 활발하다. 전리단길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 ‘모모치’도 3층에 있다.

    ■ 지방 상권 살리는 ‘~리단길’ 전국에 20여 곳

    이런 현상은 ‘전리단길’ 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망리단길’(망원동)·송리단길(석촌호수), 인천 부평 ‘평리단길’, 대구 대봉동 ‘봉리단길’, 광주광역시 동명동 ‘동리단길’, 경북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 전북 전주 중앙동 객리단길(중앙동) 등 전국에 ‘~리단길’의 이름을 딴 거리가 20여곳에 달한다.

    서울과 가까운 지방 중소도시에선 이런 거리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방 상권 전체를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북 전주시 ‘객리단길’이 대표적이다. 전주시 다가동 객사1·2길은 2~3년 전만해도 거리 곳곳에 빈 건물이 많아 버려진 도심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하나둘씩 들어선 특색있는 점포들이 SNS에서 인기를 끌면서 '객리단길'로 불리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한옥마을과 객리단길이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됐을 정도다.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을 걸어가는 관광객들. /경주시 제공

    경주의 황리단길도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건물 증·개축에 어려움을 겪던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었다. 하지만 대릉원과 인접한 도로 양쪽으로 과거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와 퓨전식당, 상점이 들어서면서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명물거리가 됐다.

    ■ 원조 경리단길은 내리막…‘반짝 유행’ 우려도

    전국에서 ‘~리단길’이 유행하는 현상은 정부가 목표로 삼는 ‘도시 재생’의 바람직한 방향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부산 전포동의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전리단길을 보면 정부나 지자체가 거액을 투자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사업들보다 훨씬 낫지 않느냐”며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젊은 창업가들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효율적”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 대형 상가에 임차인을 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코노미조선 제공

    하지만 정작 ‘~리단길’의 시초인 서울 경리단길은 임대료 상승과 유행의 변화에 따라 다시 죽어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곳들이 ‘반짝 유행’하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경리단길의 전용면적 33㎡(10평) 가게가 2012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만~80만원 수준에서 3년 후인 2015년 보증금 5000만원, 월세 250만~300만원까지 급등했다. 부산의 ‘전리단길’ 역시 1년 전에 비해 권리금과 월세가 10~20% 정도 올랐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입지가 떨어지고 임대료가 저렴한 곳이라도 점포별로 자신만의 특징을 잘 살리면 SNS 홍보 등으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다”며 “하지만 경리단길에서 보듯이 이런 곳들도 유행이 변하면서 인기가 식을 수 있어 결국 각자가 얼마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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