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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놔도 안빠져요"…강남 역전세난 본격화

    입력 : 2019.01.21 09:57 | 수정 : 2019.01.21 10:40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입주를 앞둔 주부 박모(49)씨는 요즘 잔금 마련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거주 중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전세놓고 헬리오시티 잔금을 내려고 했는데 은마아파트 전세가 두 달 넘게 안나가고 있어서다. 1주택 보유자인 박씨는 잔금 대출이 불가능해 전세금을 받지 않으면 추가로 돈을 구할 데가 없다. 박씨는 “전세를 시세보다 5000만원 낮췄는데도 안나가고 집을 급매라도 내놔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오종찬 기자

    올해 9월 입주하는 강동구 ‘고덕그라시움’은 입주 8개월 전부터 벌써 전세물건이 나와 있다. 전체 4932가구에 이르는 대단지여서 헬리오시티처럼 입주 시점에 전세금이 급락할 것을 대비해 집주인들이 발빠르게 전세를 내놓은 것이다.

    ‘고덕 그라시움’ 아파트 전용면적 59㎡ 전세는 처음 5억1000만원에 나왔다가 최근 4억8000만원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전용 84㎡도 7억원이던 전세가 현재 5억8000만원까지 내려갔다.

    최근 전세금값이 하락으로 세입자와 집주인이 고민이 늘고 있다. 세입자는 제 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고 집주인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신용대출을 받거나 살던 집이 안나가 새 아파트 잔금을 못 치르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방은 이미 '깡통 전세'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엔 비교적 안정적인 임대차 시장을 유지해온 서울까지 역전세난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 강남 4구 입주 물량은 1만6000여가구다. 그러나 사실상 이달부터 입주가 시작된 헬리오시티 9510가구를 포함하면 올해 실질적인 강남권 입주 물량은 2만6000가구에 달한다. 2017년 강남4구 입주물량이 약 1만가구, 지난해 헬리오시티를 제외하고 6300여가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인근 공인중개사 사무소 모습./뉴시스
    특히 송파구(1만500여가구)와 강동구(1만1000여가구)에 입주물량이 몰려 있다. 미니 신도시급 충격파를 주고 있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가 3월 말까지 입주하는 것을 비롯해 6월 명일동 래미안명일역솔베뉴(1090가구), 9월 고덕그라시움(4932가구), 11월 암사동 힐스테이트암사(460가구), 12월 고덕센트럴 아이파크(1745가구), 상일동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1859가구) 등 올해 대단지 신규 입주가 줄을 잇는다.

    여기에다 2년차 전세 재계약 물량까지 가세하고 있다. 2017년 3월 입주한 강동구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3658가구)에서 2년 만기 전세 물건이 쏟아지면서 이 아파트 전용 84㎡ 는 지난달 초까지 7억원이던 전세금이 현재 5억원대 초중반으로 하락했다.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이 줄줄이 입주하고 입주 2년차 전세까지 나오면서 이 일대는 요즘 세입자를 못 구해 난리"라며 "지금 나오는 전세 물건은 몇 천만원 떨어진 정도지만 앞으로 입주가 줄줄이 이어지면 세입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전셋값도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에서도 당장 다음달 래미안블레스티지(1957가구)를 비롯해 9월 디에이치아너힐스(1320가구)까지 약 3300가구가 입주해 인근 지역 전세를 끌어내리고 있다. 재건축 대상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4㎡는 지난달 초 5억5000만∼6억원이던 전세금이 한 달 만에 4억8000만∼5억원으로 떨어졌다.

    대출까지 막히면서 전세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1주택 이상자는 규제지역에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본인 거주 주택의 전세가 들어오거나 팔리지 않으면 잔금 마련이 힘들게 된 것이다. 가락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물건이 한꺼번에 쏟아지다보니 물량 충격을 견디지 못해 잔금 납부 때문에 사정이 급한 사람들은 전세금을 계속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강남권도 전세가 안 나가긴 마찬가지다. 서민 아파트가 밀집한 노원구 상계동 일대도 최근 전세 수요가 급감했다. 동작구에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흑석뉴타운 아크로리버하임(1073가구) 등 2000여가구가 넘는 단지가 입주하면서 전세 물건이 적체되고 있고 있다.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84㎡는 지난해 10월 7억2000만∼7억5000만원이던 전세금이 12월에 6억∼6억8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전세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세입자와 집주인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우선 전세보증금 반환 분쟁도 늘고 있다. 최근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를 중심으로 임차권 최근 등기명령 신청도 크게 증가하는 분위기다. 임차권 등기명령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세입자가 보증금 우선변제권을 잃지 않기 위해 등기를 해서 대항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임차권등기가 완료돼 등기부등본 상에 임차권등기 내용이 등재되면 임차인이 해당 주택을 다른 임대인에게 임대해 확정일자 등을 받더라도 기존 세입자의 우선변제권이 유효하게 유지된다. 직장인 김모(45)씨는 최근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했다.

    김씨는 "새 아파트로 입주를 해야 하는데 전세가 석 달 째 안나가 어쩔 수 없이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나왔다"며 "대항력은 유지하겠지만 보증금을 못받고 나와서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에 전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가입하는 사람도 급증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금액 건수는 8만9350건, 보증금액은 19조36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7년 실적(4만3918건, 9조4931억원)에 비해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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