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1.20 04:25
“지금 한국에서는 집을 팔고 싶어도 세금이 무서워 팔 수가 없죠. 심지어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마저 줄이겠다고 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해서는 임대주택 확대가 불가능합니다.”
국내 임대주택 관리 1위 회사인 젠스타하세코파트너스(GHP)의 임채욱 대표는 “문재인 정부 최대 과제 중 하나인 임대주택 활성화를 위해서는 1980년대 일본 상황을 참고할만하다”고 했다.
부동산 관리회사인 젠스타와 일본 하세코가 합작한 젠스타하세코파트너스는 현재 국내 민간임대주택 5만5000여가구 중 3만3000여가구를 관리·운영하고 있다. 임 대표는 업계에서 ‘주택통(通)’으로 불린다. 삼성물산에 입사해 ‘래미안’ 브랜드 탄생에 일조했고, 미국 코넬대 부동산대학원을 거쳐 미국 부동산 회사에서 10여년간 일했다.
그는 “일본의 임대주택 시장을 발전시킨건 상속세”라고 말했다. 상속세가 임대주택 시장 발달의 원동력이 됐다는 건 무슨 말일까.
Q. 상속세 때문에 임대주택 시장이 성장했다니….
“일본은 1980년대 말 버블(거품) 붕괴 이전까지 20~30년 간 땅값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집을 팔고 싶어도 팔기가 어려워졌다. 나이 먹는 전후 세대들이 집을 물려줘야 할 때가 오면서 상속세 문제도 불거졌다. 상속세 세율이 50%에 육박해 집을 팔아 세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집이 안 팔리니 진퇴양난이었다고 한다. 개인 입장에선 재산을 지키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 필연적인 상황이었다.
이 당시 일본에서 성행했던 사업이 ‘유효활용(有效活用, 사용하지 않는 자산을 활용한다는 의미)’ 임대주택 사업이다. 다이토켄타쿠나 레오팰리스21는 도심이 아니라 교외 지역의 토지주에 주목했다. 교외 지주들에게 “당신의 땅을 잃지 않기 위해 대출을 끼고 목조 아파트를 지으세요”라고 광고했다.
사업 방식은 이렇다. 임대주택 전문회사가 집주인에게 20년 이상 장기임차를 약속하고 기존 단독주택을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하거나 증축할 것을 제안한다. 집주인은 담보대출을 받아 임대주택 회사에 증축 공사비를 제공한다.
이 때 집주인은 굳이 집을 팔지 않고 은행 대출을 낀 상태에서 자식에게 집을 넘겨주는 부담부증여를 하면 상속세를 피할 수 있게 된다.”
Q. 국가에서도 임대주택을 지으면 세제 혜택을 줬다던데.
“당시 일본 정부는 임대주택을 지으면 상속세 과표(課標)를 종전 대비 3분의 1로 낮추는 정책을 시행했다. 임대주택은 감가상각이 적용된다는 논리였다.
예를 들어 원래 건물 가격 100원, 토지 가격 200원 등 총 300원짜리 부동산이 있다고 하자. 임대주택을 지어 상속하면 과표가 건물 30원, 토지 60원 등 총 90원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건축비 100원을 대출받으면 상속세 과표(90원-100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다.
만약 임대주택을 짓기 않고 단순 매각할 경우 여전히 300원에 팔 수 있다. 문제는 일본 교외 지역에서는 손바뀜이 거의 없어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땅의 장부가격이 0원인 경우가 많다. 오래된 땅이어서 매각차익이 커 양도소득세이 부담이 커진다. 결국 땅을 팔기보다는 임대주택을 짓는 것이 여러모로 땅주인들에게 유리했다.
임대주택 회사는 큰 자본 투자없이 임차인에게 서브리스(sublease, 전대)를 줘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집주인은 집을 팔지 않고도 상속세와 이자를 내고 생활이 가능한 임대료를 거둘 수 있는 구조였다.
지금은 일본 최대의 임대주택 회사가 된 다이토켄타쿠(大東建託)나 레오팰리스21 등이 이를 이용해 크게 성장했다.”
Q. 당시에 임대주택 수요가 많았나. 문제점은 없었나.
“20~30년 전 일본에도 양질의 임대주택이 많지 않았다. 원룸이 적었고, 다들 하숙이나 집주인과 함께 사는 셋방살이가 많았다. 그런만큼 임차 수요는 충분했고, 집주인들 사이엔 상속세 대책이라고 해서 순식간에 퍼진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다이토켄타쿠와 레오팰리스21이 제시한 목조주택 설계는 내구성이 떨어졌다. 준공 10년쯤 지나면 유지 보수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공급이 늘어 회사가 서브리스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임대료도 못 맞추는 경우도 생겼다. 회사는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낮추자고 요구하고 건물주는 이에 반발해 소송으로 맞서는 일도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이런 집짓기 방식이 일본의 집값 하락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엔 임대주택을 포함해 연간 100만~120만가구를 지었는데, 버블 붕괴 이후에도 임대주택 공급이 지속됐다. 현재 주택 공급량은 연간 60만~70만가구 정도 된다.”
Q. 정부는 대규모 임대주택을 계속 공급하려고 한다. 왜 기업형 임대주택이 필요한가.
“동네 가게와 대형 마트를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동네가게는 단골이면 깎아주는 장점이 있지만, 상품 종류가 적고 서비스의 질이 표준화돼 있지 않아 들쭉날쭉하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어딜가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관리부터 물건 종류, 마일리지, 포인트 적립 등이 표준화돼 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기업형 임대주택은 대규모로 관리해 전문성은 물론 비용 측면에서도 절감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기업이다보니 세입자들이 세금계산서 발행이나 전입신고 등을 하는데 있어 눈치보지 않고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Q. 임대주택 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밝다고 본다. 인구구조가 1인가구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저출산이 가속화되고 이혼·분가 등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심지어 부부도 생활 패턴에 따라 따로 사는 경우도 생긴다. 한국과 외국을 오고 가는 한국인이나 외국인도 늘고 있다. 전세는 줄고 월세가 일반화되고 있다. 임대주택 수요층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Q. 임대주택 시장 확산에 걸림돌은 무엇인가.
“토지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 임대주택을 지으려면 수도권, 특히 역세권에 지어야 하는데 토지비가 너무 비싸니까 수익이 안 나온다. 그렇다고 임대료를 매년 올릴 수도 없다.
그래서 필요한 방식이 일본의 유효활용 임대주택 모델이다. 땅을 사기보다 10~20년 마스터리스로 장기간 빌려 시장 수준보다 낮은 임대료를 내고, 대신에 공실 등 리스크는 회사가 진다. 건물주 입장에선 회사가 확정적으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회사가 망해 임대료를 못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할 수 있는데, 임대 회사의 신용도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