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29 04:08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노인 자살률은 판자촌보다도 높습니다. 집은 있는데 돈과 일자리는 없고, 사회적으로 단절돼 고통받는 현상이 자살률 증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지난 22일 사단법인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이 주최한 ‘지방분권형 주거복지정책’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은 전 주택산업연구원장인 남희용 원장이 공공경제와 산업·생태 전반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세운 연구기관이다.
변 교수가 이날 주제 발표에서 인용한 김영욱 세종대 교수 자료에 따르면 영구임대주택 거주자의 자살률(2007~2011년)은 10만명 당 39.2명, 판자촌은 29.8명이다. 변 교수는 “이것만 봐도 임대주택 정책에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국내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공공임대주택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양대 기관인 서울시 산하의 SH공사 사장(2014~2017)을 지냈다.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전문가다.
■임대아파트는 ‘못 사는 주택’이라는 편견이 문제
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의 문제점으로 ‘낙인’과 ‘사회적 배제’를 꼽았다. 그는 “서울의 어느 영구임대주택 단지에 가보면 4000가구 단지에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다. 아이가 없으니 학교가 폐교되고, 동네 상권도 죽는다”며 “이 때문에 영구임대주택을 비롯한 임대주택이 ‘못사는 주택’, ‘노인 주택’이란 편견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임대주택에 사는 노인들의 경우 사회적 교류가 부족해 결과적으로 높은 자살률로 이어진다.
변 교수는 해결책으로 공공임대주택의 통합을 제시했다. 다양한 계층이 사용하는 영구임대주택, 국민임대, 공공임대, 매입 임대 등과 청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행복주택을 한 단지에 묶어 놓으면 낙인과 사회적 단절을 해소할 수 있으리란 것이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민간 주택과도 완전히 통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주택 관리 권한이 중앙 정부에 집중돼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종합적인 복지정책 관리가 불가능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는 LH와 SH,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3가지 유형의 주거복지센터가 있다. 반면 지방에는 이 중 하나도 없는 지역이 대다수다. 지방 공사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경우는 서울의 SH공사가 유일하다.
변 교수는 “중앙정부가 계획된 공급량에 맞춰 주택만 짓고 말 것이 아니라, 단지 내에 일자리도 만들고 공동체 프로그램·입주민 돌봄 서비스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넣어야 주거복지를 넘는 생활 복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지자체에 입주자 선정 권한과 주택도시기금 운용권한 등 관리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 “재건축 용적률 높여주는 대신 임대주택 더 짓도록 유도해야”
변 교수는 주거복지 확대를 위해 ▲자가 주택 확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주거급여 확대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관리 확대 등 4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는 집값 문제를 비롯한 주거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와 비교해 자가보유율과 공공임대 주택 비율, 정부의 사회보장 지출 규모가 모두 낮다”며 ”현재 7% 정도인 서울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좀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비율 9% 를 목표로 설정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공공주택 재고 등을 고려할 때 12% 정도까지가 최대일 것”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도심에서 고품질 주택을 저렴한 가격으로 어떻게 공급할 지가 현재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으로 ▲재건축 아파트에 50%의 용적률을 추가로 주는 대신 임대주택을 기부하도록 하는 방안과 ▲재개발 리츠를 이용해 도시재생·재개발 사업의 공공임대주택을 매입할 것 등을 제시했다.
변 교수는 “민간 부문이 임대주택 건설하도록 유도하면 세금 부담 없이 양질의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며 “임대 주택확대와 함께 민간 임대주택의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관리하고 고시원과 같은 취약 주거 환경 개선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