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11.15 06:00
한국 찾은 토마스 보니어 국제건축연맹 회장
"주택문제 해결 위한 녹지 훼손은 근시안적 발상" 쓴소리
“집을 짓겠다고 녹지를 훼손하는 건 근시안적인 발상입니다. 당장 멈춰야 합니다. 이미 도시화한 땅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집값 상승 등에 따른 주거 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공통 고민이다. 한국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도시 인근 녹지라도 풀어 집을 짓는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8 대한민국건축문화제’에 참석하러 최근 한국을 찾은 토마스 보니어(Vonier) 국제건축연맹(UIA) 회장은 “저렴하고 질 좋은 주택을 도시에 공급하고 외곽지역에 누구나 접근 가능한 교통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건축인 320여만명을 대표하는 UIA(Interntional Union of Architects) 수장이다. 땅집고는 최근 제주도에서 보니어 회장을 만나 주택과 도시의 미래, 세계 건축의 흐름 등에 대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 주택 문제가 골칫거리다. 해법이 없을까.
“우리 모두가 편하고 럭셔리한 집에 살지는 못한다. 도시에는 부자도 살고, 가난한 이도 산다. 도시가 돌아가는데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 세계 건축가들은 소득이 적어도 살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해 고민한다. ‘반쪽의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를 설계한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ravena)가 좋은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재작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반쪽 집’은 저소득 근로자를 위한 공동체 집이다. 거주자가 직접 건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반쪽 집(half-house)’은 큰 집의 절반에 해당하는 공간만 최소한으로 설계하고 나머지 절반은 거주자들이 직접 채워나가는 모델.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칠레 해안 도시에 처음 선보였다.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주택 절반만 시공하고 나머지는 계단이나 골조로 남겨둔다. 남은 공간에 집을 더 지으려면 집주인들이 건축 방법을 배우고, 자금과 자재를 모아 직접 건축해야 한다.
주택의 절반만 짓기 때문에 예산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거주자들이 직접 건축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자립을 도울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다.
-서울에선 그린벨트를 풀고 집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연을 훼손하고 녹지와 농지를 파괴하는 건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이는 굉장히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지속가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멈춰야만 한다.
이미 도시화한 땅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땅을 개발하는 건 오히려 쉽다. 땅을 효율적으로 쓰지 않는 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심 외곽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누구나 지불 가능한 교통 수단을 만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도시 교통수단(equitable urban mobility)’을 제안한다. 서울은 저렴한 비용으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대중교통과 환승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소외 지역을 없애고 위성도시와 외곽까지 이런 시스템을 확대한다면 주택 문제 해결에 더욱 좋을 것이다.”
-한국의 도시와 건축을 어떻게 보나.
“지난 20년간 서울을 5~6회 방문했다. 우선 서울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참 훌륭하다. 사용자 친화적이다. 전 세계 도시와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 외국인이 이동하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인프라도 인상적이다. 강이나 개천 주변엔 근린시설과 생활체육시설이 많다. 서울이 공공교통 인프라를 늘리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공공교통 확대는 자연 환경에도 좋다. 자동차가 늘면 환경을 해칠 수 밖에 없다. 공공교통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한국의 전통 건축에도 관심 있다. 북한산 진관사를 방문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서울은 영혼이 있는 도시다. 세계적으로도 관심 가질만한 콘텐츠가 많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지키고 가꿔나가는 게 중요하다.”
-한국엔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아직 없다.
“프리츠커 수상자를 선정할 때마다 심사위원들은 상의 의미와 목표를 재정의한다. 한국 건축가도 수상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초도시화 사회에 진입했고 대도시는 여러 도전을 해결해야 한다. 서울도 대도시로서 부(富)의 양극화, 새 것과 옛 것의 공존 등이 모두 나타나는 곳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면 한국 건축가들의 수상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