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떠나는 우수인력, 주말엔 유령도시…그런데 4조 더?

    입력 : 2018.11.06 04:00

    충북 진천군 충북혁신도시 내 공공기관에 다니는 30대 여성 A씨. 그는 주중에는 진천의 원룸에서 지내고, 금요일마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서울 집으로 올라가는 ‘주말 부부’다. 때때로 일이 많아 2주일만에 서울에 올라가면 아이는 엄마를 낯설어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A씨는 “균형 발전도 좋지만 공공기관 직원들 입장도 생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반시설과 지원 없이 만들어진 인위적 균형발전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충북 진천군 충북혁신도시 내 한국교육개발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건물.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는 공공기관을 지방 10곳으로 분산하는 혁신도시가 균형 발전이란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혁신도시의 열악한 주거 여건 탓에 공공기관 종사자 중 가족과 함께 현지에 정착한 경우는 절반도 안된다. 나홀로 부임한 직원들은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최근 혁신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또 다른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 2’ 사업이다. 4년간 4조3000억원의 사업비를 더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혁신도시 시즌 2’는 ‘시즌 1’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 직원 절반은 ‘기러기’…주말이면 ‘유령 도시’

    혁신도시 추진은 2005년부터 시작했다. 수도권에 밀집한 공공 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각 지방의 기업, 대학, 연구소 등과 집적(集積)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이다. 2012년 12월 국토해양인재개발원이 제주로 옮겨간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전(移轉) 대상 153개 기관 중 147개 기관이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주했다.

    하지만 실제 공공기관 이주 성과는 드러난 숫자의 ‘절반’에 불과하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혁신도시에서 일하는 공공 기관 기혼(旣婚) 직원 가운데 가족과 함께 혁신도시로 이사한 비율은 절반(48%)인 1만3791명에 그친다. 1만2847명(44.8%)은 A씨처럼 평일에 혼자 살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가는 이른바 ‘기러기’이고, 나머지 2068명(7.2%)은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서 출퇴근한다.

    지난 25일 오후 충북혁신도시 한국가스안전공사 인근 대로변에 빈 상가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유리창엔 ‘임대’ ‘분양’ 같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문을 닫은 음식점들도 많았다. /이송원 기자

    수도권과 가깝고 거주 여건이 좋지 않을수록 가족 동반 정착률이 낮았다. 버스로 편도 2시간쯤 걸리는 충북혁신도시는 가족 동반 이주 비율이 21.9%에 불과하다. 법무연수원 직원 89.2%는 서울 등 외부에서 출퇴근한다. 강원혁신도시는 공공기관 직원의 37.5%만 가족과 함께 살고 50.8%가 기러기 생활을 한다.

    이렇다 보니 당초 예상했던 균형발전 효과는 미미하다. 2014년 충북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앞 지상 6층 신축 상가는 통째로 비어 있다. 시내 거리마다 ‘미분양 아파트 할인 판매’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기러기 아빠·엄마’들이 떠난 주말에는 혁신도시 일대는 ‘유령 도시’가 되는 곳이 허다하다.

    ■ 지방 이전 후 우수 인력 떠나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공공기관의 비효율도 간과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권에서 충북, 강원 등 비교적 가까운 혁신도시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도로에서 허비하는 시간이다. 충북혁신도시로 이주하지 않은 직원들은 200km 가까운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기도 한다.

    /그래픽=조선DB

    업무 협의차 잦은 수도권 출장으로 시간과 예산도 낭비된다. 2016년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방 이전 공공기관의 전체 출장 횟수는 2013년 65만6306회에서 2015년 84만1997회로 28.3% 증가했다. 출장비도 2013년 526억4100만원에서 2015년 716억9200만원으로 36.2% 늘었다.

    공공기관에서는 지방 이전 이후 우수 인력도 떠나고 있다. 지난해 2월 전북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년 넘게 공석인 이유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 불리함 때문이라는 내용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까지 소개됐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은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 이후 국민 노후를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 운용 인력 유출이 조직 운영을 어렵게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 ‘지방 달래기’가 ‘밑 빠진 독에 물붓기 될 수도’

    이런 상황에서 ‘혁신도시 시즌 2’가 시작된다. 정부는 지난 25일 혁신도시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2022년까지 4조3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특화 발전에 2조9000억원, 주거환경개선에 1조1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사업비는 국비 1조7000억원, 지방비 1조3000억원, 민자 1조3000억원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과거 혁신도시를 처음 만든 현 여당은 집권 후 혁신도시에 다시 불을 지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 4일 국회 연설에서 “122개 공공기관의 (추가) 지방 이전을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사흘 후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정주(定住) 여건 개선, 기업 유치 등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혁신도시 시즌 2’를 만들겠다”고 했고, 그 결과가 이번 발표다. 여론을 의식했는지 이번 발표에는 공공기관 추가 지방 이전은 빠졌다.

    정부가 지난 10월 26일 발표한 혁신도시 맞춤형 종합발전계획. /국토교통부

    하지만 이번에 나온 지역별 특화발전 계획은 그동안 실패한 정책을 답습한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부산혁신도시는 2300억원을 들여 ‘산학연 협력단지’를 조성하고, 강원도는 스마트헬스케어, 전북은 농생명융합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그동안 수없이 시도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과거 정책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현 여권이 서울 집값 급등에 따른 지방 소외에 대한 국면 전환 카드로 ‘혁신도시 시즌2’를 꺼내 들었다는 평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균형 발전이란 목표를 위해 수도권 기능을 억지로 지방으로 분산하는 하향평준화 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는 “이미 진행 중인 혁신도시 중에도 미개발과 미분양이 많은 상황에서 추가 자금 투입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며 “지방 경제 활성화가 수도권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